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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기훈 ]



*본 기사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라 불리는 홀로코스트는 그간 영화계에서 여러번 다뤄진 주제였다.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와 같이 수용소 내의 참상을 생생히 고발하는 가슴아픈 드라마도 있었으며 '조조래빗',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 수용소 안팎의 어린 아이의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도 존재한다. 또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리스트'는 잔혹한 수용소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을 다뤘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기존의 역사를 비틀어 통쾌한 결말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이렇듯 영화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며 이 중에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도 다수 탄생하였다. 그리고 최근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와 완전히 다른 구성을 보이는 또 하나의 문제작이 탄생했다.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2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수용소의 안과 밖, 두 개의 세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수용소 안의 모습을 조명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우슈비츠의 운영자이자 악명 높은 가스실 계획을 구상한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이다. 영화는 관객을 수용소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회스 가족이 저택으로 초대한다. 새로 지은 집에 드넓은 텃밭이 펼쳐져있고 시냇물이 고요하게 흐르는 회스의 저택은 생명이 탄생하는 공간이자 가족들의 추억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이후에 회스가 다른 전장으로 부임되었을 때 회스의 아내는 '이곳에서 일궈온 것들을 포기할 수 없다'며 자식과 함께 아우슈비츠에 남는다. 그들에게 아우슈비츠는 떠나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었다.


카메라는 주로 회스 가족의 시선을 따라가고 담장 안의 수용자는 배경으로만 사용된다. 이따금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제외하면 자연광으로 촬영된 수용소 주변의 풍경은 평화롭고 심지어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러나 정적인 화면에 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관객들이 이곳이 살육의 현장임을 인지하게끔 한다.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비명소리, 총소리, 개 짓는 소리가 그 실상을 아는 관객에게 공포감을 조성한다. 수용소 밖의 사람들 간의 신변잡기적 대화에 스며든 범죄적 행태에 대한 고백, 가족들이 낚시와 물놀이를 즐기는 시냇물에 섞여 내려온 뼛가루와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과 독일인 가족간의 뚜렷한 계급은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수용소와 결코 분리되어있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회스와 아내는 수용소 내에서 벌어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한다. 회스에게 수용소의 유대인은 처리해야 할 일감에 불과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방안을 모색하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의 아내는 텃밭에 나무를 심어 담 너머로 보이는 수용소를 가리려고 한다. 이들에게 수용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관객에게 선명히 들리는 총성을 외면하고 새의 지저귐이 아름답다 말한다. 아우슈비츠는 그들만의 낙원이 되었다.


그러나 회스와 그의 아내를 제외한 인물들은 담장 너머의 수용소를 인식한다. 회스의 아내는 타지에 살다 온 어머니에게 텃밭을 보여주지만 어머니의 관심은 온통 수용소에 있다. 그녀는 전쟁 전 알고 지내던 유대인의 이야기를 꺼내지만 딸은 개의치 않는다. 해가 지면 유독 커지는 공장의 연기와 매캐한 냄새도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지만 딸의 부부는 전혀 모르는 듯 행동한다. 결국 그녀는 아우슈비츠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아우슈비츠는 역시나 일상적 배경이 되었지만 그들은 수용소의 일을 어렴풋이 인식한다. 어린 아들은 사과를 두고 다투는 유대인을 처벌하는 간수의 목소리를 듣고 '다신 그러지 마'라고 혼잣말하고 밤에 들려오는 유대인의 비명을 따라한다. 그보다 더 어린 아기는 하루종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고발과 고백, 희망과 관망 사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수용소의 참혹한 장면을 직접 비추지 않고 언뜻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담장 너머의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 홀로코스트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된다. 영화의 극적인 내러티브는 숨겨두고 평화로운 나치 가족의 집에 초대된듯한 시점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동시에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두가지 편집 기법을 통해 영화의 전율을 극대화했다. 우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현재 시점의 아우슈비츠의 장면을 삽입했다. 이 장면을 통해 영화의 극으로써의 전개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다뤘다는 다큐맨터리적 고발이 완벽히 교차한다. 이 순간 관객은 더이상 영화 속의 일을 그저 영화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비극적 암시를 더해가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영화는 점점 더 어두운 전개를 그려나간다. 실제의 역사는 권선징악과는 지극히 거리가 멀고 억압받는 다수의 극적인 복수가 이루어지기도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내기도 한다. 한밤중의 어둠을 틈타 유대인 수용인들을 위한 사과를 거리에 숨겨놓는 소녀의 이야기다. 이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장면이며 영화의 주요 전개와는 분리되어 있지만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자 감독이 이 영화의 제작을 결심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장면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적외선카메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자연광만을 활용해서 촬영된 이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주가 되는 회스 가족과의 괴리를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전파하려는 의지를 더 뚜렷히 드러나게 하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는 기존 영화 문법에 따른 극적인 이야기 전개를 찾아볼 수 없다. 한 가족의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마치 같이 사는 듯 담아낼 뿐이다. 이들의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가끔씩 들려오는 수용소의 비명을 애써 무시한다면 관객 또한 이 가족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들의 태연했던 나날을 고발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과연 이들과 다른 사람인가?"




참고문헌

우리의 미몽을 깨트리는 공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이영재.연합뉴스.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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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6-19 23: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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