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리
[한국심리학신문=나누리 ]
"어떤 우정은 사랑과도 닮아있다."
어디서 보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구절이지만,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서 아직도 기억나는 문장이다.
어릴 적의 나는, 특히 중학생의 나에게는 친구가 곧 나의 세상이고 전부였다. 부모님의 귀가 독촉 전화를 멋대로 받지 않고서, 집에 들어가서 혼이 나면서도 또 다음 날 다시 친구를 만나러 나갈 생각에 들뜨던 사람이었다.
한여름 뜨거운 공기 아래에서 뛰어다니던 날들이 즐거웠고, 떡볶이를 먹고, 빙수를 사 먹고, 서로가 좋아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하며 시시덕거리고, 1년에 한 번씩 패스트푸드점에서 하던 생일 파티 모두, 지금 생각해도 매우 즐거운 기억이었다.
물론 모든 친구와의 관계가 끝까지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연락을 따로 하지 않을 정도로 어색해진 친구들도 많고,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다시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며칠 전 사진 드라이브를 정리하면서 오래된 핸드폰에 연동되어 있던 사진들 여러 장을 찾게 되었는데, 사진마다 등장하던 익숙하고도 정겹던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를 만났던 건 초등학교 때였는데,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빠르게 친해져서 곧잘 붙어 다녔다. 중학교에 와서는 같이 노는 친구들이 달라도 자주 놀고, 계속 연락하며 지냈다.
이후에, 어떤 갈등으로 인해 점차 사이가 서먹해지게 되었으나, 다시 곧잘 놀며 잘 지냈는데,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고 멀어졌다.
분명, 갈등이 있던 그 당시에는 그 친구가 너무 밉고 싫어서 싸우고 멀어진 것이었을 텐데, 단순히 나의 기억력이 나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과거 기억을 미화시키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 친구와 왜 멀어졌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하나 기억이 나던 장면이 있다. 친구가 축제 공연을 올라갔을 때였는데, 공연하는 친구가 너무 멋져 보이면서도, 당시 개인적인 일들로 마음고생이 심해 살이 많이 빠졌던 그 친구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었다. 당시엔 스스로도 왜 우는지 이해를 못 했었고, 주변에 다른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웃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를 아주 좋아했기는 했구나 싶었다.
성인이 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진심으로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 지가 너무 궁금하다. SNS가 이렇게 발달한 지금에도 그 친구의 계정을 찾는 것 하나조차 쉽지 않았다. 사실, 가장 간단하고 효과가 빠른 방법은 직접 전화하거나 연락처로 문자 한 통 남기는 것이었는데, '요즘 뭐 하고 지내?'라고 갑자기 묻는 것이 나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불어, 나는 모든 안 좋은 기억을 깔끔히 잊은 채로 그 친구와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떠들고, 웃고 싶을 수 있지만, 그 친구는 사실 그 정도로 내가 생각나지 않고,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이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은 나의 욕구를 가장 주춤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나만의 '시절 인연'으로 남긴 채 이 궁금증이나 왠지 모를 그리움을 안고 가야 하는지, 혹은 용기 내 한 번의 만남이라도 가지려고 시도해 보는 것이 나은 쪽인지 모르겠다.
시절 인연이란,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라고 한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통하며,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그 친구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새로운 '때'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과거의 인연을 다시 만나고 싶고, 상대방도 그에 응한다면, 다시 또 친구 사이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처음이라 스스로도 당황스럽다.
마치 현재 나의 모습은 과거의 그 친구와 나와의 관계에 대한 '향수'를 좇고 있는 사람 같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이런 대사가 있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부정이야. 고통스러운 현재의 부정." 현재 상황이 심히 불만족스럽거나, 현 상황을 인정하기 싫을 때 과거를 계속 좇게 된다는 말인데, 정말 나의 상황이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나는 과거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상태가 아니며, 유독 그 친구만 계속 떠오르고, 새롭게 인연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글을 적어서 보낸 이후, 나에게 그 친구에게 연락을 보낼 용기가 생겼길 바라며,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시절인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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