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한국심리학신문=김기훈 ]
이미지 제공 = 신시컴퍼니
"어디 출신? 미시시피! 부모님은? 완전 부자!"
요즘 숏츠를 내리다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뮤지컬 '시카고'의 한 장면이다. 교제중인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록시와 그녀의 변호인 빌리가 짝을 맞추는 복화술과 함께 익살맞은 넘버 'We both reached for the gun'이 흘러나온다. 범죄와 섹스 그리고 쇼 비즈니스의 어두운 면을 그리며 진중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시카고에서 몇 안되는 유쾌한 장면이다.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공연을 계속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로 꼽혀왔던 시카고가 최근 3년 만에 한국 공연을 재개하며 배우들의 실감나는 복화술이 화제가 되어 뮤지컬 또한 매진을 이어가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주로 인형을 앞세워 입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복화술은 오래 전부터 종교적 의식이나 마술 등에서 신비감을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극중에서는 쇼비즈니스의 주인공이 되어 변호사 빌리의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록시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록시가 주목받을 수 있는 유리한 대목은 과장하고 불리한 내용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며 록시를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아닌 섹스 심벌로 탄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빌리는 때로는 과장된 여성적인 목소리로 때로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현란한 복화술로 관객들이 혼을 빼놓는다.
복화술은 단순히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것이지만 복화술을 잘한다고 평가할 때에는 능청스러운 연기력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단순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정해진 대본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성량까지 높여야 하는 뮤지컬에서 완벽히 입을 움직이지 않는 복화술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당장 위의 두 줄 대사에도 한국어 구조상 입술을 부딪쳐서 소리를 내야하는 ㅁ, ㅂ, ㅍ 등의 자음이 다수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복화술이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서는 빌리 자신의 연기 뿐만 아니라 짝을 맞추는 여배우의 과장된 액션으로 빌리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빼앗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을 속이기 위한 두 배우의 협동작전이 요구되는 것이다.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범죄와 욕망으로 가득찬 도시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한때 쇼비즈니스의 일원이었으나 사랑으로 인해 살인자로 전락한 벨마와 록시 두 매력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공권력의 부패와 자극적인 주제를 맹목적으로 쫓는 언론과 대중을 풍자한다. 빌리는 유능한 변호사로 표현되지만 그의 변호는 법리적 쟁점을 다투기보다는 의뢰인의 서사와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가 대중의 스타가 되고 결국 법정에서 승리를 얻어내는 장면은 현재의 법체계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쇼비즈니스가 범죄와 밀접하게 연관되던 1920년대의 시대상을 현대에도 빈번하게 벌어지는 언론플레이 및 황색 저널리즘과 연관지어 표현했음을 알게 되면 비로소 그 의도가 이해되기 시작할 것이다.
시카고의 또다른 볼거리는 주인공 세명 간의 속고 속이는 심리전이다. 빌리는 더 높은 수임료를 받기 위해 록시와 벨마를 이간질하고 그떄그때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범죄를 찾아 떠난다. 벨마는 록시에게 향하는 관심으로 본인이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록시에게 협업을 제시하고 록시는 본인이 받는 주목을 유지시키고자 자신이 임신했다는 거짓말로 언론을 집중시키고 이후에는 빌리와의 음모로 벨마에게 유리한 증거를 본인이 조작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카고의 범죄와 쇼비즈니스의 또다른 피해자이자 언론에게 이용당하는 어두운 이면으로 그려졌던 두 여성은 점차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바라며 자극적인 기사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더욱 자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대중의 관심이 줄어들자 그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다행히 언론의 관심이 멀어진 시기가 재판 이후여서 처벌을 면할 수 있었으나 든든했던 빌리도 곁에 없는 현실에 록시는 허탈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록시와 벨마는 감옥에서 구상했던 두 사람의 보드빌 공연을 이어가며 쇼비즈니스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올 대중의 관심을 바란다.
참고문헌
소름끼치는 복화술, 600만 뷰 터졌다... 정통 뮤지컬의 힘 '시카고', 중앙일보, 홍지유 2024.07.09.
유통기한 없는 신선함과 독창성... 뮤지컬 '시카고', MHN스포츠, 장민수,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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