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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를 똑같이 나누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우리가 모르는 경계선 지능인의 이야기
  • 기사등록 2024-10-14 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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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나윤 ]


케이크를 나눠보세요


여기 당신 앞에 동그란 케이크 그림이 있다. 케이크는 하나인데 먹고 싶은 사람은 셋이다. 마침 당신이 손에 빵칼을 쥐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양의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과제이다. 굳이 수학적 지식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경험과 직관을 통해 우리는 원의 중심을 기준으로 세 개의 반지름을 그려 삼등분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하고 간단해서 사고 회로를 거의 거치지도 않는 것 같은 이 활동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려운 과제라고 하면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아동 정신과 의사이자 의료 소년원 상담사인 저자 미야구치 코지의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에 케이크를 세 조각으로 나누지 못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교도소에서 비행 청소년을 상담하다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에 속하는 인지 기능이 부족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앞서 말한 케이크 자르기 과제는 인지 기능 테스트의 일환으로, 놀랍게도 강간, 폭행, 절도 등 흉악 범죄를 저질렀던 아이들이 케이크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책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중 경계선 지능에 속하는 청소년 범죄자가 그린 그림

아이들은 원 안에 가로선을 두 개 그리거나, 원을 반으로 나눈 뒤 다시 반으로 나누는 등 적절하지 못한 수행을 했다. 이들은 지적 장애와 정상 지능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 즉 경계선 지능인이다.

 



경계선 지능인이란?


경계선 지능인은 웩슬러 지능검사(WISC)검사 결과 지능 지수 70 이상 80 이하, 혹은 70 이상 84 이하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위치한 사람들을 말한다. 지능 지수 70 이하는 지적 장애로 분류한다. 경계선 지능 장애는 지능의 정규 분포에 따라 전체 인구의 약 13.6%에 해당하며, 분포상으로 추정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 약 705만 명 정도가 경계성 지능 인이다. 일반적으로 지하철 한 칸의 정원이 100명 내외이므로, 통계적으로 바라보면 매일 타는 지하철 한 칸 중 열세 명, 한 학급을 30명으로 볼 때 3~4명 정도가 경계선 지능 장애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야구치 코지가 발견한 것처럼, 비행 청소년 중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에 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족한 인지 기능을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범죄에 취약해질까? 작가는 다섯 가지 특징을 설명한다. 

 



첫째로, 인지 기능이 약하다. 

인지 기능이란 기억, 지각, 주의력, 언어 이해, 판단 및 추론 같은 요소가 관계되는 모든 지적 과정을 뜻한다. 오감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주어진 상황을 뒤틀리게 해석하기도 하고, 이것이 범죄 행위와 같은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두 번째로, 감정 제어 능력이 약하다. 

이는 약한 인지 기능과 더불어 이해할 수 있는데, 인지 과정에서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감정 제어를 관장하는 대뇌변연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감정 제어는 인지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경계선 지능인은 감정 조절 및 적절한 방식으로 스트레스 해소가 어렵기 때문에 옳지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세 번째로, 융통성이 없다. 

작가는 ‘유연하지 못한 생각이 잘못된 행동을 낳는다’고 말한다. 문제 상황에서 일반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생각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고르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라.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친구에게 빌리거나, 돈을 훔친다는 여러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돈을 훔친다는 선택지는 이후에 여러 부정적인 결과가 따르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당연히 제외할 것이다. 그러나 두뇌가 유연하지 않아 가장 쉽고 빠른 훔친다는 선택지만 떠오르면 어떨까? 부정적인 결과를 겪었다 해도 문제 상황에서 계속해서 같은 방식만 반복하게 된다. 융통성이 부족하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상황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인지기능


네 번째로,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앞서 설명한 대로 경계선 지능인은 인지기능이 부족해 상황을 적절히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상대의 반응을 올바르게 해석하거나,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에 서툴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을 몰라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여자아이의 관심을 받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몸을 멋대로 만지는 성추행을 저지르는 식으로 말이다.

 

다섯 번째로, 자기 평가가 부적절하다. 

작가는 면담을 통해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의 자기 평가가 극단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근거 없이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위축된 아이도 있다. 자기 평가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상대의 반응을 통해 피드백을 받으며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인 관계 능력이 부족하면 자기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앞서 설명한 대로, 부족한 인지기능으로 인해 정보를 올바르게 수집하지 못해 피드백을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고, 따라서 정상적인 자아상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계선 지능인들이 겪는 어려움



경계선 지능인은 조기에 두드러진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아 집중적 치료와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다. 조기에 중재를 받지 못한 경계선 지능 아동이 학령기에 접어들게 되면, 학습 및 또래와의 교류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촉발된 좌절감과 부정적인 자아상이 극복되지 못하면 낮은 자아존중감과 자기효능감, 나아가 학습된 무기력이 심화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이 성인기에 접어들면 구직은 물론 근로의 지속과 자립 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에서 작가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4차 장애로 정리한다.

1차 장애는 장애 자체에 따른 것, 2차 장애는 주변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를 받지 못하고 학교 등에서도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따른 것, 3차 장애는 비행을 저지르고 교정시설에 들어왔는데 역시나 이해받지 못하고 엄격한 지도를 받아 한층 더 악화되는 것, 4차 장애는 사회에 나와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편견 때문에 일을 계속하지 못해 다시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


경계선 지능인은 일반 학급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학습 부진아로 낙인되기 쉽지만, ’특수교육 대상자’로 보기에는 기준이 높아 현재의 교육 제도 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기본적 성격의 법률은 존재하지 않고, 지역별 지원 조례가 산발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지원이 초, 중등 교육 차원에 국한되며, 그마저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계선 지능 자체에 대한 교사의 인식도 낮은 편이고, 특수 교육과 일반 교육 사이에 마땅한 교육적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따라서 경계선 지능 아동 개인별 맞춤 지원이 필요하다.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한 재활, 재생 훈련을 하면 발달 장애로 이어지지 않고 비장애인 수준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에서 작가는 하루 5분 가량의 간단한 인지 기능 트레이닝만으로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과제 수행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육과 지원을 미리 받았으면 소년원에서 케이크 자르기 과제를 시행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상황이 달라졌지 않았을까.

 



  • 보이지 않는 이들을 바라보며


본 기사는 지능 장애와 범죄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는 모든 경계선 지능인이 잠재적 범죄의 위험이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경계선 지능인의 범죄는 선천적 인지 능력 부족으로 인한 것이므로 이해하고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함도 아니다. 

 모두의 연대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이들은 통계상 지하철 한 칸당 열 명 내외로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들을 보지 못한다. 목소리가 약해 교육, 정책, 근로 등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소외당하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 본 기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선천적인 특성으로 이들이 겪는 문제가 있으며, 적절한 교육과 지원이 없으면 범죄라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지하철을 탈 때, 사람이 많은 거리를 걸을 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보이지 않는 이들을 한번 떠올리자. ‘이 안에는 내가 모르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미야구치 코지. (2020).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pp. 1-236). n.p.: 인플루엔셜.

2). [기획3] 장애와 비장애 사이, 사각지대에 빠진 경계선 지능 아동 . (2023). https://www.peoplepower21.org/welfarenow/1939582.

3). : 최시현, 김화수 (2024)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경계선 지능인, 현황 및 향후 과제, 제23회 국제다문화의사소통학회 & 한국발달 장애재활학회 공동학술대회, pp.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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