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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박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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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리에게’


필자가 요즘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다. 언뜻 제목만 봤을 때 주인공 ‘해리’가 겪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해리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인공 은호는 과거 친동생의 실종사건을 겪은 후 일명 다중인격장애로 불리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기 시작한다.

 

그는 14년 차 무명 아나운서 주은호와 주차관리 요원 주혜리의 인격을 오간다. 극중 은호는 직장 내 괴롭힘과 불안정한 연인 관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어두운 인물인 반면, 혜리는 한없이 해맑고 자유로운 인물이다. 마음속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은호가 또 다른 인격인 혜리가 될 때 새로운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모습은 매회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왔다. 그러나 은호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혜리의 인격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그는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행방불명된다. 

 


해리성 정체 장애, 그게 뭔데?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1.5%가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해리성 정체 장애란 2개 이상의 자아를 가진 정신 질환이며 각 자아는 서로 다른 정체성, 특성 및 기억을 지닌다. 이러한 극도의 심리적 분열은 신체적 회피 및 통제가 불가한 상황 아래 겪은 과도한 신체·정신적 트라우마가 주원인이다.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는 자아가 바뀔 때 일상적 사건, 중요한 개인정보, 외상적 사건 등을 기억하는 데 공백이 발생하고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해당 장애는 항우울제 또는 항불안제 등 약물치료와 심리치료가 병행된다. 이중 심리치료는 자아의 균형을 도모하거나 과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관련 예방과 완치법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기에, 전문가들은 초기에 증상을 발견해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환상이 아니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드라마 속 단골 소재이다. 2015년 방영된 MBC 드라마 <킬미힐미> 속 주인공 재벌 3세 ‘도현’은 어린 시절 아동학대를 겪은 후 갑작스러운 분노와 폭력성을 표출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능글맞게 행동하는 등 일곱 개의 인격을 오간다. 당해 방영된 SBS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재벌 2세 ‘서진’이 또 다른 인격을 갖고 살아가는 와중에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이야기를 다뤘다. 2021년 방영된 tvN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서로 다른 두 인물로 구현하고 이들이 하나의 몸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구현해 시청자의 이목을 끌었다. 

 

반면, 해리성 정체 장애는 미디어의 흥미로운 전개 요소로 활용되는 것과 별개로 현실에서는 매우 위험한 양상으로 발현된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할 중대 범죄자가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다는 이유로 면책을 요구하거나 서사를 부여받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7년 미국 LA에서 10여 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인한 연쇄 살인범 케네스 비안치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해리성 정체 장애를 주장했으나 경찰의 심문 끝에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2017년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발발 당시, 다수의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가해자가 본인의 범죄 사실을 기억하지 못해 그가 조현병이나 해리성 장애를 앓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일각에서 가해자에게 불필요한 범죄 서사를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해리성 정체 장애를 둘러싼 흥미 위주의 언론 보도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이전부터 다중인격의 정의를 광범위하게 해석하거나 증상에 대한 정확한 취재 및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채 해리성 장애를 논한 기사가 발간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김한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기성 언론에서 ‘해리성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얻을 경우 관련 기사가 다수 발행된다’며 ‘정확한 통계 및 질환에 대한 이해 없이 흥미 위주식 기사로 독자에게 해리성 장애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맺으며


우리 사회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단순히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미디어 속 흥미를 유발하는 클리셰 따위로 치부되지는 않는가? 이는 실제 해리성 정체 장애로 일상을 영위하는 데 난항을 겪는 이들에게 2차 가해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사회의 해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지점이 되길 고대한다.

 


참고자료

1) 한국일보, [Website], 2015, 해리성 장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의 그림자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10312246767590

2) 헬스조선, [Website], 2024,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첫방 화제… 주인공 겪는 ‘해리성 정체 장애’ 뭘까?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9/24/2024092401728.html

3) 이투데이, [Website], 2014, 다중인격 장애, 해리성 장애의 하나…“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881259

4) 국제뉴스, [Website], 2017, “기억·의식·인격 붕괴” 8살 초등생 살해 17세 女, 해리성 장애?

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82389#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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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1-06 01: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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