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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신지아]



예전이 그리워



연인과 이별하고 시간이 지나 보고 싶을 때, 힘들었던 대학 시절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을 겁니다. 분명 그 당시에는 연인과 잘 맞지 않아서, 학업과 취업 준비가 너무 힘들었을 텐데 우리는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억이 '미화'되기 때문이죠. 이는 다른 말로 '기억 왜곡'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불과 몇 초 전에 발생한 일도 왜곡해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과 기대에 따라 상황을 재구성하기 때문이죠. 학계에서는 이를 '단기 기억 착시 현상'이라는 용어를 붙였습니다.


마르테 오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심리학과 오텐 교수는 연구팀과 함께 단기 기억 착시 현상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는 "사람은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바가 있을 때 불과 3초 전 일도 주관을 반영해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방금 일어난 일도 왜곡되기 쉬우니, 오래전 일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서운한 일만 기억나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 갈등을 더 키우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택적 기억'입니다. 상대에게 고마웠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오로지 서운했던 일만 선택해서 기억합니다. 그러면 한 가지 작은 서운한 일로만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서러웠던 점도 한꺼번에 꺼내 일을 더 키우게 됩니다. 


이렇게 타인이 나에게 했던 안 좋은 일을 더 기억하는 반면에, 내가 남에게 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잘못하고 상처 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잘해줬던 일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은 받기보다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대다수는 본인을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일대 심리학자 라이언 칼선 등의 연구에 의하면 특히 '이기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선택적 기억 왜곡이 더 심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선행과 희생은 과대평가하지만, 타인의 배려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죠.


연구자들은 참가자에게 일정 금액의 돈을 주고 다른 참가자와 공평하게 나누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나눈 금액을 참가자가 정확히 기억한다면 추가적인 보상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럼에도 평소 욕심이 많고 인색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나눠준 금액을 크게 부풀려서 기억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며, 무의식에도 본인의 행동을 실제보다 덜 이기적인 것으로 왜곡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죄책감 없이 이러한 행동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미화되는 이유



같은 정보를 주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무수히 많은 기억으로 저장됩니다. 아내가 출산이 임박했을 때 최선을 다해 돌봤다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힘들어하는 자신을 버리고 컴퓨터만 하고 있었다는 아내의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항상 절대적인 사실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사진 찍는 것처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2007년 일본 과학자들은 어린 침팬지가 성인 인간보다 작업기억 능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했습니다. 침팬지와 인간 앞에 1부터 10까지 숫자가 무작위로 있는 10개의 상자를 주었습니다. 숫자가 사라지면 해당하는 상자를 순서대로 눌러 맞추게 하는 것이었죠. 그 결과 침팬지는 90%가 넘는 정확도를 보였지만, 인간은 수십 번 중 한 번 맞출까 말까였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간단한 정보도 사진처럼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기억은 학습의 과정을 통해 신경계에 정보가 각인되는 것입니다. 반복 학습이 이루어진다면 입력된 정보와 다른 정보를 섞어 특정 정보로 변환해 두었다가 이후 원래 입력한 내용에 가깝게 인출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이 인출되는 가정에서 다른 자극에 의해 변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을 때,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면 기존의 기억이 변형됩니다. 결국 기억의 재조작은 새로운 학습을 통해 원래의 기억을 변형하고, 그 뒤 새롭게 저장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에는 '그땐 그랬지'로 변할 수 있는 겁니다.


기억이 미화되는 것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최대한 정확한 기억을 위해 하나씩 적어두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출처

1)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10번 고맙다가 딱 1번 서운한 일만 기억하는 사람들", 2023.12.23, 동아사이언스,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3021

2) 박정연 기자, "인간은 몇 초 전 일어난 일도 왜곡해 기억한다" , 2023.04.06, 동아사이언스,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9296

3)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 "나는 네가 한 일을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2017.12.28,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171228213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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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1-27 00: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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