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현
[한국심리학신문=엄정현 ]
그랑프리(Grand Prix)의 시작을 알리기 직전, 모두 켜진 불[9].
단호하고 담담하지만, 웅장히 다섯 개의 빨간 불이 순서대로 켜지고, 불이 꺼지면 굉음과 함께 가속을 시작한다. 시속 33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다가도, 순간 시속 65km까지 줄였다가 다시 달려야만 한다. 먹구름이 끼고 비 예보가 있으면, 팬들은 환호하고 팀은 분주해진다. 현장에 가 있는 사람들은 청력보호구를 착용해야 할 정도의 배기음 속에서, 급박하게 팀 라디오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타이어를 바꿀지, 또 바꿔도 되는 타이밍인지에 대해 의견이 오간다. 아인슈타인은 나로부터 아주 빠르게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의 시간은 나보다 느리게 흐른다고 말했다[1]. 당신에게 1초란 어떤 시간인가?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이 스무 명의 드라이버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긴 시간이다.
역사적으로 사랑받아온 “속도”의 스포츠
1906년 최초의 르망(Le Mans) 그랑프리가 진행되는 모습[10].
F1(Formula One), 포뮬러 원은 세계자동차연맹(FIA)에서 정한 규격과 제한을 엄격히 따라서 제작된 자동차를 가지고 경주하는 경기이다. 경주라는 경기 자체로만 본다면 1906년 프랑스 르망에서 시작된 그랑프리(Grand Prix)가 시작이지만, 정식으로 F1이라는 대회가 시작된 것은 1950년 잉글랜드의 실버스톤(Silverstone)에서였다[2]. <스포츠의 탄생>에 따르면, 자동차 경주는 현대의 경마 내지는 전차 경주에 해당하며, 이는 고대의 스포츠를 계승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F1이 지금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것처럼, 경마와 전차 경주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 모든 고문명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계의 10대 스포츠 시설들은 여덟 곳이 자동차 경주, 두 곳이 경마를 위한 시설들이다[3]. 인간은 오래 전부터 역사적으로 속도가 빠른 것들을 스포츠로 즐겨온 것이다[3].
아니, 빠르면 뭐가 다른데요?
모나코 서킷(Circuit, F1 경기가 펼쳐지는 트랙을 일컫는 말.)에서 펼쳐지는 그랑프리의 모습[11].
달리기, 경마, 전차 경주를 이어 자동차 경주까지. 인간은 왜 시대를 초월하여 ‘속도’에 목맸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속도 때문에 이 종목들을 좋아해 왔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가 속도가 아닌 다른 요인 때문에 달리기나 경마, 자동차 경주를 좋아했던 것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연구는 인간이 속도 자체에만 반응을 보여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에 참여한 남성들은, ‘자신이 스포츠카를 운전하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는 여성들’과 같이 속도 외의 요소와는 별개로, 속도 자체에만 생리적인 변화를 느꼈다[4].
그렇다면, 이 생리적 변화란 무엇일까? 우선 르망 24시와 같은 자동차 경주의 드라이버들에게는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포함하는 호르몬 부류인 카테콜아민이 평소 취침할 때의 여덟 배가 분비된다. 특히 아드레날린보다 노르아드레날린이 조금 더 많이 분비되는데[5], 이들은 우리의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만드는 상황을 만날 때 분비되는 호르몬들이다[6].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순식간에 혈압이 높아지고 동공이 확장되며,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흥분된다. 팔다리로 피가 빠르게 공급되며 근육에 힘이 솟는다. 한편 노르아드레날린은 인지 능력과 주의력, 기억력을 강화하는 등 정신이 번쩍 뜨이고 머리가 맑아지는 정신적인 효과도 창출한다. 이들 덕에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강해지고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7].
그런데, 그게 왜 좋은데요?
하지만, 단순히 ‘운전할 때 아드레날린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는 우리가 왜 모터스포츠의 정점인 F1에 환호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왜 이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그토록 원할까?
화려한 불꽃놀이로 유명한 아부다비(Abu Dhabi) 그랑프리에서 레드불의 자동차[12].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온몸에 힘이 공급될 때,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만들어져 고통을 잊게 만든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 고통을 잊게 하는 수준이 아닌, 황홀경을 선사할 정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라토너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인 “러너스 하이”이다. 이 엔도르핀으로 인하여 우리는 행복감과 기분 좋은 상태를 경험하기에, 본능적으로 속도에 끌리는 것이 아닐까[7].
우린 태생이 속도광들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사냥 모습이 담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the Cave of Altamira)의 벽화 복제본[13].
지금이야 달리기는 운동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간이란 존재에게 달리기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8]. 달려야 사냥할 수 있었고, 달려야 자연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 본능은 우리가 살펴보았듯 남아 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우리의 자동차나 탈 것을, 우리 존재 내지는 인격의 연장선으로 여긴다고 말한다[4]. 달리기밖에 못했던 우리가 이제는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F1은 우리의 본능을 깨우는 스포츠가 아닐까.
참고문헌
1. 시간 지연 [물리학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37110&cid=60217&categoryId=60217
2. Formula One racing [Britannica]. (2025). https://www.britannica.com/sports/Formula-One-automobile-racing
3. 볼프강 베링거. (2021). 스포츠의 탄생. 까치
4. Why Do We Feel So Thrilled By Speed? [ScienceABC]. (2023). https://www.scienceabc.com/pure-sciences/why-do-we-feel-so-thrilled-by-speed.html
5. G. Schwaberger. (1987). Heart rate, metabolic and hormonal responses to maximal psycho-emotional and physical stress in motor car racing drivers. International Archive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Vol 59, pages 579-604
6. 요하네스 뷔머. (2020). 호르몬과 건강의 비밀. 현대지성
7. 안철우. (2024). 불멸의 호르몬. 시공사
8. John Kiely. (2016). Uniqueness of Human Running Coordination: The Integration of Modern and Ancient Evolutionary Innovations. Sec. Movement Science. Vol 16.
9. What Formula 1 stars are binge-watching, from Schumacher to Alonso. [Lifestyle Asia]. (2021). https://www.lifestyleasia.com/bk/entertainment/formula-1-stars-discuss-their-favourite-binge-worthy-shows/
10. The First Grand Prix. [Classic Car Buyer UK]. (2025. https://classiccarbuyeruk.co.uk/news/the-first-grand-prix
11. F1 extends Monaco GP contract until 2035. [theScore]. (2025). https://www.thescore.com/formula1/news/3338511
12. Red Bull faces $7.4m entry fee hangover from record breaking F1 2023 season. [Autosport]. (2023). https://www.autosport.com/f1/news/red-bull-faces-74m-entry-fee-hangover-from-record-breaking-f1-2023-season/10552505/
13. Born to run? Endurance running may have evolved to help humans chase down prey. [Science]. (2024).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born-run-early-endurance-running—may-have-evolved-help-humans-chase-down-p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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