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현
[한국심리학신문=엄정현]
확연한 변화
F1 그랑프리 장면[11].
실제로, "F1: 더 무비"(이하 영화)뿐 아니라 그 전에 이미 인기를 얻었던 "F1: 본능의 질주"(이하 다큐멘터리) 등의 소위 “스포츠물”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인위적으로 제작된 스포츠물은 '극적인 연출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을 가할 수 있다'[6]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이 공개된 기간(2019~2025년) 동안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F1그룹*은 지난해 동기간에 비해 올 2분기 35%의 수익 증가를 발표하며, 영화가 기존의 F1 팬들뿐 아니라, 새로운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고 언급했다[7]. 미국의 전체 F1 시청자 수는 2017년 54만 명에서 2021년까지 95만 명으로 서서히 증가하다가, 2022년 121만 명으로 급증했다[8]. 실제로 는, 미국 시청률 증가의 약 30%에 영향을 미쳤다[8]. 마지막으로, 2025년 중반 기준, 전세계 F1 팬의 수는 2018년에 비해 63% 증가한 8억 명으로 추산된다[9]. 요약하자면,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단순 문화의 산물을 넘어, 사람들을 실제 그 종목의 팬으로 전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것이다.
왜 영화와 다큐멘터리인가?
의 포스터[12].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넘어, 결국에는 F1 경기 중계 시청에 입문하게까지 만들 정도로 흥미와 재미, 감동을 느끼도록 하는 것일까? 스포츠물이 가진, 경기 중계와는 구별되는 본질은 “이야기”이다. 스포츠물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던 사람의 인격적인 면과 경쟁, 모험과 희생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말한다[3], [4], [5], [6].
1. 이야기의 시작 : 변화
F1 그랑프리 중 발생하는 사고[13].
사람의 이야기가 감동을 줄 수 있는 첫째 이유는 ‘변화’이다. "F1: 더 무비"의 모든 이야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휘황찬란할 것만 같았던 소니의 세상이 무너지게 한, 끔찍한 사고라는 ‘변화’ 때문이다. 많은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을 통해 이야기는 이어진다[2]. 사실 이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우리는 변화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소피 스콧 교수는 “거의 모든 지각은 변화를 감지하는 데서 시작”하며, “우리의 지각 체계는 사실상 변화가 감지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변화가 있기에 수많은 가능성과 경험이 시작되는 것이다[2].
2. 이야기의 주인공 : 결함 있는 인물
F1 그랑프리 장면[14].
다음으로는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가진 ‘결함’이다. 소니는 언제가 자신의 마지막 우승이냐는 질문에, ‘우승한 적이 없다’는 답변 대신, 위트로 답변을 피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소니는 사고를 내서라도 순위를 끌어올리려 한다. 우린 누구나 각자의 결함을 가지고 있고, 이 불완전하고 부족한 부분을 가진 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의한다. 각자가 가진 결함은 모두 다르기에, 각자가 형성한 세계에 대한 모형은 어딘가 왜곡된 부분이 저마다 있다.
하지만 실제로 결함이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 현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현실이기에 우리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지 못한다. 우린 우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느낄 증거는 어디에서나 보인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그 결함으로 인해 ‘현실’이라 생각했던 세계 모형에 균열이 발생하고, 내가 실제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인물과 외부 세계 간의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3. 이야기의 핵심 : 나는 누구인가?
2021년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에서 막스 베르스타펜의 모습[15].
마지막으로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이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외부 세계와의 갈등을 자아내지만, 끝내 언젠가 내면의 갈등에 휩싸인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우리 의식의 지배권을 두고 작은 자아들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2]. 우리는 항상 똑같은 존재가 아닌, 다면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인물도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는 끊임없이 달라진다. 이런 면에서 또 우리는 동질감을 느낀다.
또 한편으로, 좋은 이야기에서는 눈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외부 세계와 인물의 내면 세계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외부 세계의 요란한 사건들이, 인물의 내면에 큰 파장을 미친다. 그리고 인물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심히 수정해나간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외부 세계에 드러나는 행동도 달라지고, 그렇게 계속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우리도 그렇다. 모든 개인은 세계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자신의 경험에 비춰 수정해나가는 과학자이기 때문이다[2].
스포츠 너머 “사람”의 이야기, 사람을 끌어당기다
자신의 생애 첫 포디움(그랑프리 1~3위)을 기뻐하는 니코 휠켄베그[16].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경험, 특히나 그것이 이제껏 이야기했던 ‘갈등’과 같은 그리 달갑지는 않은 경험을 공유하는 대상에 더 잘 공감한다[10]. 나도 그것으로 인해 힘들어 봤기에, 그 사람의 힘듦에도 조금은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이야기'에는, 내 모습과 내가 고뇌했던 것들, 혹은 내가 기뻐했던 경험들이 또 다른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F1이라는 스포츠를 넘어서, 그 속의, 나와 닮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찾아보기
*F1그룹 : F1은 일종의 브랜드이자, 기업이다. 그 F1이라는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F1(Formula One) 그룹이다. 2017년 1월 미국의 리버티 미디어가 44억 달러의 규모로 F1그룹의 지분을 매수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대중 매체 기업인 리버티 미디어가 F1그룹의 실질적인 소유주이다. 이전까지는 경기 생중계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대외 마케팅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기사의 주된 주제인 F1을 활용한 여러 미디어를 제작하고, 홍보를 시작한 것도 리버티 미디어가 F1 그룹을 인수한 다음이었다.
참고문헌
1. 영화보다 재밌는 진짜 F1의 세계를 들려드릴게요 [F1 The Real] EP.1. [Youtube]. (2025).https://www.youtube.com/watch?v=dSBkJ8Gioq4
2. 윌 스토. (2020). 이야기의 탄생. 흐름출판.
3. Caroline Soble. (2024). Narrative Storytelling as a Fan Conversion Tool in the Netflix Docuseries Drive to Survive. Communication & Sport.
4. How Drive to Survive helped Formula 1 to thrive. [Linkedin]. (2024). https://www.linkedin.com/pulse/how-drive-survive-helped-formula-1-thrive-charlie-hook-zd8xe
5. How a Netflix show has become a key driver behind F1’s rising popularity. [The Conversation]. (2024). https://theconversation.com/how-a-netflix-show-has-become-a-key-driver-behind-f1s-rising-popularity-221924
6. Is Drive To Survive *actually* better than Formula 1? [Divebomb]. (2021). https://www.dive-bomb.com/article/is-drive-to-survive-actually-better-than-formula-1
7. Formula 1 News: F1 revenue smashes $1.34 billion mark in Q2. [AutoRacing]. (2025). https://www.autoracing1.com/pl/457189/formula-1-news-f1-revenue-smashes-1-34-billion-mark-in-q2/
8. F1’s ‘Drive to Survive’ effect: Inside the show’s ratings and its impact on race viewership. [The Athletic]. (2023). https://www.nytimes.com/athletic/4402239/2023/04/13/f1-formula-one-drive-to-survive-ratings/
9. Formula 1’s Meteoric Rise: The Numbers Behind the Boom. [Autoracing]. (2025). https://www.autoracing1.com/pl/459185/formula-1s-meteoric-rise-the-numbers-behind-the-boom/
10. Bruno M. Salles. (2023). Moderate similarity leads to empathic concern, but high similarity can also induce personal distress towards others’ pain. PsyCh Journal.
11. [Pinterest]. 2024. https://pin.it/7tc91Bn9U
12. How the ‘F1’ movie filmed its thrilling car sequences – and the role that Toto Wolff played in the process [F1]. (2025). https://www.formula1.com/en/latest/article/how-the-apple-original-films-f1-movie-filmed-car-sequences.2le7vDxZDbdeZdGyhfGLHZ
13. The crashes that changed Formula One [CNN Sports]. (2018). https://www.formula1.com/en/latest/article/how-the-apple-original-films-f1-movie-filmed-car-sequences.2le7vDxZDbdeZdGyhfGLHZ
14. [Pinterest]. https://pin.it/5eOHB9fo1
15. What Happened to Max Verstappen at the 2021 Azerbaijan GP in Baku? [Essentially Sports]. (2023). https://www.essentiallysports.com/f1-news-what-happened-to-max-verstappen-at-the-azerbaijan-gp-in-baku/
16. Why Hulkenberg's F1 podium drought was never going to define his career [Autosport]. (2025). https://www.autosport.com/f1/news/hulkenberg-on-his-pretty-crazy-and-positive-story/1074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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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너머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