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그들은 왜 우리 눈물을 훔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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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엄정현]


LA다저스 시절 박찬호의 투구 장면[16]


미국 프로야구리그(MLB)에 데뷔한 선수들은 평균 5.6년이면 그 커리어가 끝난다. 누군가는 데뷔도 못한 채 은퇴하기도 하고, 커쇼와 같이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 산출된 값은 대략 6년이다[1]. 팬들의 평균 수명은 어떨까? 2024년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약 84세이다[3]. 태어날 때부터 응원할 팀이 정해지는 경우도 많은 KBO리그에서, 우리는 어릴 때를 제외하고 대략 열한 번 이상 우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선수들의 은퇴를 겪는 셈이다. 

 

2022년 8월 13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이대호 은퇴 투어 행사 장면[17]


그렇다고 모든 선수들의 은퇴를 기념해주고, 그들의 제 2의 인생을 응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선수의 은퇴를 해당 선수의 소속팀을 비롯, 리그 전체가 기념해주는 소위 ‘은퇴 투어’는 KBO 역사상 세 명에게만 허락되었다[4]. 그리 흔치 않아서 그런 것일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한 선수, 특히 오래도록 봐온 선수의 은퇴를 마주하면 눈문을 머금는다.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 선수의 은퇴식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던 최형우 선수부터 이름 모를 오랜 삼성의 팬까지[5], 상징적인 선수의 은퇴는 우리 마음을 건드린다. 그 선수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그렇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일까.

 

어느새 내 일상이 된 그들

 

지난달 18일, 캠브릿지 대학은 2025년의 단어로 “parasocial”을 선정했다[6]. 이는 실제로 서로 사적으로 알지는 않지만, 책이나 영화, TV 등의 매체를 통해 아는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 일방적인 관계를 칭하는 것. 나는 그 사람을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른다. 캠브릿지 대학은 특히 올해는 개인과 셀럽, 인플루언서, 혹은 AI와의 관계에서 위와 같은 일방적인 관계가 두드러졌다고 덧붙였다.

 

리버풀 소속(당시) 사디오 마네[18]


물론 올해의 단어에 선정된 것은 AI로 인해 두드러졌기 때문이지만, 사실 스포츠 팬들은 이미 일방향적인 관계에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SNS가 발전함에 따라 팬들은 선수에 대해서 경기장 안에서의 모습뿐 아니라 사적인 정보까지 잘 알고 있다[7]. 당시 리버풀 소속 사디오 마네가 고향에 병원과 학교를 건설했다는 미담[8]부터, 차마 언급할 수 없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선수의 이야기까지 우리는 선수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선수의 여러 정보가 노출되면 사람들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선수에 대한 소위 ‘미디어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선수의 모습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격을 칭한다('실제 인격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일 뿐,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가상의 인격과 감정적인 애착이 생기게 되고[9], 이는 친밀감과 존경 등의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7]. 그렇다고 해서 위와 같은 사람들의 모습들이 망상 같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7]. 오히려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실제로 감정을 느끼기에, 특히 오래 봐온 선수의 은퇴는 한 사람과의 이별이나 관계의 단절과도 비할 수 있지 않을까.

 

“덕분에 제 어린시절이 진짜 행복했어요”[5]

 

오승환 은퇴 다큐멘터리 인터뷰 화면 캡쳐[5]


한 삼성 라이온즈 팬이 오승환 선수의 은퇴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다음으로는 당신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아보자. 적어도 하나 정도는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스포츠를 향유하면서 많은 “flashbulb memory”를 형성한다. 이는 카메라의 플래시처럼 짧지만 강력히,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는, 자전적인 기억들이다. 이들은 놀랍거나 감정의 변화를 동반하는 수준의 사건에 의해 형성되는데, 단순히 기억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기억들은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기도 한다[10]. 

 

(왼쪽부터) 선동열(당시 해태 타이거즈), 최동원(롯데 자이언츠), 김시진(삼성 라이온즈)[19]


중요한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명예의 전당과 같은 곳에서 옛날 선수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 등을 봤다고 가정하자. 사람들은 그 유니폼에서 단순히 그 선수의 수많은 경기 중 한 경기를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때 그 선수를 통해 당시 어린아이였던 자신의 시간대로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온다[11]. 그 선수를 통해, 그때 자신에게 야구에 대해 설명해주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11]. 

 

은퇴식에서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는 그저 한 명의 프로스포츠 선수는 아닐 것이다. 그 선수를 통해 되살아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젊었던 날들의 기억들, 혹은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시간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눈물을 훔치는 그 선수를 통해 우리는 오늘도 시간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희망을 말하는 그대여, 그대에게 비친 내일을 살아가는 나는 미소 짓고 있나요?[12]

 

삼성증권배 2002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이승엽과 마해영의 모습[20]


“정말 우리에게 이 많은 추억을 안겨줘서 고맙습니다.”[13]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자, 이승엽의 은퇴식 마지막에 삽입된 문구였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첫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일궈낸 KS 6차전 9회말 6 : 9로 뒤진 상황 극적인 3점홈런[14],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 한일전 8회 말 2 : 2 동점 상황에서의 2점홈런[15] 등, 팬들의 마음과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 그에게 합당한 마지막 인사였을지도 모르겠다.

 

은퇴식에서 눈물을 보인 오승환[21]


우리의 눈물을 훔치는 그들은 단순히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떠나는 그들에게 기꺼이 눈물을 내어주는 것은, 그들이 어느샌가 우리의 삶과 기억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에 지칠 때즈음 그들 덕에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 미소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도 우리에게 말한다. 팬들이 있어 행복했노라고.




출처

1. Average Major League Baseball Career 5.6 Years, Says New Study. [ScienceDaily]. (2007).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07/07/070709131254.htm 

2. 기대수명 [시사경제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99403&cid=43665&categoryId=43665 

3. 기대수명 [Naver]. (2024).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op_hty&fbm=0&ie=utf8&query=%ED%8F%89%EA%B7%A0+%EC%88%98%EB%AA%85&ackey=jb32ad6u 

4. 마지막 은퇴 투어...오승환 "이제 구단 버스 타고, 경기장 나올 일이 없겠네요" [고척 현장] [스포츠조선]. (2025). https://www.sportschosun.com/baseball/2025-09-28/202509280100203790029583#_enliple (은퇴투어)

5. [오승환 다큐멘터리] ‘CLOSER’ : 삼성 라이온즈의 영원한 수호신 [YouTube]. (2025). https://www.youtube.com/watch?v=zcUv7PF5BRQ 

6. Cambridge Dictionary reveals Word of the Year 2025 [UNIVERSITY OF CAMBRIDGE]. (2025). https://www.cam.ac.uk/news/cambridge-dictionary-reveals-word-of-the-year-2025#:~:text=The%20Cambridge%20Dictionary%20has%20named%20%22parasocial%22%20as,*%20Celebrities%20*%20Influencers%20*%20AI%20chatbots 

7. Why do fans often feel a strong bond with athletes? [TILBURG UNIVERSITY]. (2024). https://www.tilburguniversity.edu/magazine/overview/why-do-fans-often-feel-a-strong-bond-athletes 

8. 사치보다 선행...고향에 병원ˑ학교 건설한 '기부천사' 마네 [엑스포츠뉴스]. (2022). https://www.xportsnews.com/article/1594042 

9. Ranbir Singh Kharabanda. (2025). From Field to Feed: The Impact of Parasocial Bonds and Athlete Credibility on Brand Loyalty.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Science Research and Review, Vol 8 Issue 7, 420-437

10. JENNIFER M. TALARICO, KIRA M. MOORE. (2012). Memories of ‘The Rivalry’: Differences in How Fans of the Winning and Losing Teams Remember the Same Game. Applied Cognitive Psychology, Vol. 26 Issue 5, p746-756.

11. Why Great Halls of Fame Move People: The psychology of recognition [ADVENT]. https://adventmovespeople.com/hall-of-fame-psychology/ 

12. Hello Mr. My Yesterday (명탐정 코난 10기 주제가 한국어버전) [BUGS!]. https://music.bugs.co.kr/track/3693302 

13. 레전드 국민타자 이승엽 은퇴식 171003 [YouTube].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kU6JDEuQfQg 

14. '23년 만에 역데자뷔?' 4위 삼성, KS서 1위 LG 만날까?...2002년 4위 LG, KS서 1위 삼성과 격돌해 가장 드라마틱하게 패퇴 [마니아타임즈]. (2025). https://www.maniareport.com/view.php?ud=20251015111029600891b55a0d56_19 

15. 야구의 날 11주년 기념 다시 보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선 토너먼트(feat. 국뽕) / 스포츠머그 [YouTube].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54KTZrdtwXY

16. The Godfather of Seoul: Chan Ho Park, the first Korean MLB player, gets his moment [The New York Times]. (2024). https://www.nytimes.com/athletic/5352096/2024/03/19/mlb-korea-dodgers-padres-chan-ho-park/ 

17. ‘은퇴 투어’ 반환점 돌았지만... 이대호는 여전히 뜨겁다 [중앙일보]. (2022). 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9/01/2df64499-b187-40c7-97c6-cac01a18515c.jpg 

18. 리버풀 사디오 마네, 디디에 드로그바 잡았다 [일간스포츠]. (2022). https://isplus.com/article/view/isp202204290002 

19. 선동열, 김시진이 말하는 고 최동원 [스포츠한국]. (2011). https://sports.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4878

20. 2002년 삼성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들어냈던 이승엽과 마해영 듀오 [Oh my Photo]. (2018).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2361831 

21. [굿바이 오승환] 결국 눈물 흘린 돌부처, 오승환 "후회 없이 야구 했고 후회 없이 떠난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 [일간스포츠]. (2025). https://isplus.com/article/view/isp2025100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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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 : 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를 ‘기대수명(Life expectancy at birth)’이라고 말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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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2-29 08: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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