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안예린 ]


필자는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아는 사람에 한해서가 아니라 길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의 부탁도 쉽게 들어준다. 그러나 그 사람이 초면에 다짜고짜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면 거부감을 느껴 피하게 된다. ‘나를 만만하게 보나?’,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거지?’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상대방에 대한 반감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때 우리는 흔쾌히 그 부탁을 승낙하지 않는다. 한 시간을 기꺼이 소모할 정도로 상대방과 친분이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어떠한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상대방이 만약 ‘주문하고 올 때까지 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면, 그때는 쉽게 그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주문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 정도 부탁은 쉽게 들어줄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상대방과 작은 유대감이 형성된다. 그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상대방이 ‘한 시간 동안 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면, 앞서 부탁을 들어주기 전의 상황보다 더 높은 확률로 이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이미 상대방과의 유대감이 쌓인 뒤라 부탁을 거절하면 보다 더 쉽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큰 부탁은 더욱 쉽게 들어준다는 심리를 이용한 기법을 바로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foot-in-the-door technique)’이라고 한다. 이 기법의 전제는 상대방과의 유대감이 쌓인 상태에서 부탁을 거절하면 느끼게 될 죄책감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Pixabay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은 1966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프리드만(Freedman)과 프레이저(Fraser)의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두 학자는 A타입의 실험 대상에게 먼저 집안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에 대한 간단한 응답을 요구하였다. 사흘 뒤, 이번에는 앞서 A타입의 실험 대상과 더불어 B타입의 실험 대상 모두에게 집안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검사하기 위해 집을 조사해도 되는지 질문했다.


실험 결과, 첫 번째 부탁을 들어준 A타입의 실험 대상이 B타입의 실험 대상보다 더 두 번째 부탁을 쉽게 들어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앞서 이미 한 번 부탁을 들어주고 난 후라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관대해지고, 더 유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은 여러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특히 환경운동가나 기부 단체에서 이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걸 목격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작은 부탁으로 시작했다가 끝끝내 서명 운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사소한 부탁을 먼저 들어주게 만든 뒤, 그다음에 이어질 부탁이 별거 아닌 거로 느껴지게 만들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Pixabay


반대로 첫 번째 부탁을 터무니없는 거로 요구한 뒤, 그다음 부탁을 조금 쉽게 바꾸어 상대방의 승낙을 이끄는 기법도 존재한다. 이를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door-in-the-face technique)’이라고 한다.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과 정반대의 순서로,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가 그다음에 비교적 상식적인 부탁을 하면 상대방이 더욱 쉽게 들어준다는 심리를 이용한 기법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부탁을 들어주게 만드는 기법이 두 가지가 존재한다. 두 가지의 기법 모두 어느 상황에서나 유용하게 쓰일 것 같지만, 상대방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냐에 따라 유용성이 달라질 것이다. 반감을 쉽게 품는 사람이라면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추천하고, 유대감이 쉽게 쌓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난 기사

한 명을 죽이느냐, 다섯 명을 살리느냐

"아저씨가 때렸어요" 4살 아이의 증언,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사랑에도 이론이 있을까?

그때는 즐거웠지

내가 아프면 관심을 주실 건가요?

당신은 오늘, 누구를 손민수했나요?

나만의 고고한 길을 걷겠어! 홍대병? 백로 효과?

1등 죽이기





참고문헌

[현장칼럼] 문간에 발 들여놓기. [한국교육신문]. (2016).

URL: https://hangyo.com/mobile/article.html?no=78835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100원을 빌리려면… 10원부터 빌려달라 하세요.[조선일보]. (2019).

URL: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1/2019080100380.html

협상을 할 때 작은 요구부터 하는 것이 유리할까? 큰 요구부터 하는 것이 유리할까?. [정신의학신문]. (2021).

URL: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1639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5445
  • 기사등록 2023-01-20 16:29:5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