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수
[The Psychology Times=이연수 ]
최근 드라마 ‘더글로리’가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김은숙 작가의 필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유명세에 한몫했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도 큰 몫을 했다. 주인공 동은이가 18년간 준비해온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가 차근차근 진행될 때마다, 가해자들이 가진 것을 하나하나 잃고 파멸해나가는 모습은 가히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부분에서 학교폭력에 노출됐던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과 상관없는 과거를 가진 시청자들에게도 이런 장면들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기다려왔던 장면일 것이다. 동은이를 보며 감정이입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본래 인간이란 타인의 불행을 보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라마 속 인물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더글로리와 달리 인물이 악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조금 더 쉬운 예시를 생각해보자면 예능을 떠올려보면 된다. 1박 2일에서 멤버가 낙오되는 장면, 무한도전에서 추격전을 하며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는 장면, 런닝맨에서 벌칙을 당하는 장면. 대다수는 이런 장면을 보고 깔깔대고 웃었을 것이다. 한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행어가 생겼던 것을 생각해보면 1박 2일에서 복불복 코너는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그 유튜버들이 흔히 동료나 친구를 괴롭히는 영상을 찍었을 때 조회수가 잘 나오는 것도 비슷한 예시로 볼 수 있다. 개그 유튜버 보물섬의 영상 중에는 괴식을 만들어 서로 먹여주는 일종의 자학 콘텐츠가 있는데, 구독자들이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콘텐츠이다. 매번 보물섬 멤버들은 다음 편은 없다며 괴로워하는데도 댓글에서는 후속작을 기다리는 반응뿐이다.
왜 남이 불행한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는 걸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거나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손해를 의미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을 의미하는 프로이데(freude)를 합친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을 표현한 단어이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미나 시카라 교수는 뉴욕과학아카데미연보에 지인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평소 지인에 대한 부러움이 클수록 기쁨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팀은 불쌍한 노인, 잘 나가는 전문직, 마약 중독자, 학생 등 다양한 사람의 사진을 보여준 후 그들이 겪는 상황을 묘사하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물어보고, 근전도 측정기를 통해 반응을 측정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부러움을 느끼는 대상이 5달러를 주웠다는 상황보다 택시가 튄 물에 흠뻑 젖었다는 상황에 더 활짝 웃었다고 한다. 즉, 샤덴프로이데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샤덴프로이데 심리에 의해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껴야 하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질투, 시기, 열등감은 마땅히 드는 감정이지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만 국한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이 없더라도 기쁨, 재미, 행복을 느낄 수 있기에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하면 충분히 웃을 수 있을 일이 많을 것이다. 특히나,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낀다면 남들이 불행할 때보다 더 크게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샤덴프로이데 심리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부러워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자기 계발의 원동력으로 쓴다면 스스로 발전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를 거스르기는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필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길 바란다.
지난기사
【참고문헌】
최영준, “다른 사람이 불행할 때 뇌에서 느끼는 불편한 기쁨”,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dal77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