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연
[The Psychology Times=이해연 ]
기사의 제목을 읽고 당황해 클릭하기를 망설였다면, 여전히 뒤로 가기를 고민하고 있다면 만류하고 싶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제목과 같은 언어 놀이 문화가 만연하다. 보통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상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놀이이다. 일명 ‘주접’이라고 하는데 사전적 의미의 주접이란 ‘옷차림이나 몸치레가 초라하고 너절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놀이 문화로 확산된 ‘주접’은 의미가 다르다.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한껏 과장된 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 색다르고 기발한 언어유희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다음 사진을 보면 주접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선 사진은 콘서트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향한 팬의 주접을 담은 플래카드 사진이고 다음 사진은 지난 2021년, 도쿄올림픽 양궁 분야에서 좋은 결과를 낸 국가대표들을 향한 주접 댓글 사진이다.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진심을 담은 표현이 외면받던 시기는 지났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이유로 젊은 세대 사이, ‘주접’ 문화가 만연해진 것일까.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전우영 교수에 따르면 주접 놀이에는 놀이의 주체가 되는 MZ 세대가 온라인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라는 배경이 있다. 이들에게 있어 댓글은 콘텐츠이다. 기성세대는 찬성과 반대, 긍정과 부정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댓글을 활용했지만 젊은 세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슷한 유머 코드를 가진 사람들과 놀이를 하듯 즐기는 양상을 보인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젊은 세대에게 낯선 공간이었더라면 주접 문화의 확산이란 상상하지 못했을 현상인 것이다. 한편 한 기사에 따르면 취업 준비생 윤(25) 씨는 “세상살이가 힘들고 팍팍하니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질 때마다 댓글을 주고받으며 웃음과 위로를 얻는다. 일상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우리 세대만의 소통 방식”이라고 말했다. 즉 주접 문화를 일종의 놀이로 즐기는 세대는 유머를 통해 공통된 문화를 공유하고 일종의 위안과 웃음을 얻는 것이다. 대게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익명성을 무기로 혐오와 부정적 표현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타인을 향한 증오와 혐오의 확산이 빠른 공간이기도 했다. ‘주접’의 등장은 그런 공기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좋아하는 대상과 칭찬받아 마땅한 대상을 향한 마음이 남다른 말들로 표현되며 그 속에서 위안과 웃음까지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폭력적인 말들이 가득하던 공간에는 이제 다정하고 따뜻하며 기발하기까지 한 말들이 여럿 보인다.
말에는 힘이 있다. 랭어 박사의 ‘호텔 메이드 실험’을 통해 우리는 그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박사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호텔 메이드 일 즉 청소하는 일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운동이 된다고 말했고 다른 그룹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4주 뒤, 노동이 아닌 운동으로 메이드 일을 생각했던 그룹은 체중, 체지방 비율, 혈압이 비교그룹보다 훨씬 낮아졌다. 즉 말은 감정과 행동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영향을 행사할 만큼 힘이 있다는 것이다. 또 심리학과 김정호 교수와 심리학 고은미 박사는 그들의 책 『말의 알고리즘』을 통해 말은 생각의 방향을 알려주고 생각의 방향은 결국 자신이 주로 어디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고 이야기한다. 부정적인 말 혹은 긍정적인 말의 반복은 개인의 특질로 고정되어 버리는데, 어떤 말을 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정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혐오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표현이 넘실대던 실정에서, 진심 어린 말이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치부되던 실정에서 ‘주접’의 등장이란 그러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무언가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을 다정한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좌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란 곧 개인의 특질과도 연결이 되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색다른 차원의 ‘주접’으로 표현한 피천득의 글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그러며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자고, 좋아한다고 기꺼이 말하고 표현하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게 우리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른 아침 종달새 소리를 좋아하며, 꾀꼬리 소리를 반가워하며,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즐긴다.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를 좋아하며,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나는 골목을 지나길 때에 발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생략)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 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지난기사
장순자 백반집 vs 윤율혜 백반집, 배가 고픈 당신의 선택은?!
참고자료
1. 신동아[Website], (2020), 『‘주접 댓글’ 놀이에 빠진 MZ세대』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167062/1
2. 피천득, 『피천득 문학 전집2 : 나의 사랑하는 생활』, 범우사, 2022
3. 채널예스[Website], (2022), 『말 습관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지는 이유』,
https://ch.yes24.com/Article/View/50900
4. 고은미·김정호, 『말의 알고리즘』, 한밤의 책, 2022
5. 유튜버 ‘드립의 민족’[Website], (2022), 『한국인 드립 댓글 모음-도쿄올림픽 양궁』,
https://www.youtube.com/watch?v=rIeoQUXkIIo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sunkite03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