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영
[The Psychology Times=최서영 ]
“실제 살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과외 앱에서 학부모로 위장한 뒤 또래 여성인 과외 학생을 유인하여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23)이 밝힌 범행 동기이다. 한 문장만으로도 소름이 돋지 않는가.
악랄하고 흉포한 살인을 저지르고, 범죄 현장을 나서는 그의 당당한 발걸음을 본 누리꾼들은 과연 범죄 동기가 무엇일까에 주목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경찰 조사 과정 중 “영어 실력이 좋지 못하다”라며 취업 준비 과정에서 영어에 대한 중압감이 있었다고 진술하며 학벌 콤플렉스에 의해 사회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으로 인한 살인이 아니냐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범죄분석가들에 의하면, 정유정의 살인은 일반적인 살인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개 고의성을 띠고 있는 일반적인 살인과 달리, 이 사건의 경우 ’살인 자체‘에 목적을 둔 쾌락형 살인이었기 때문.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연결성이 아예 없었다는 점 그리고 분명한 범행동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범죄 유형을 ’묻지마 범죄‘로 유형화하고 있다.
범죄를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묻지마 범죄‘, 과연 그 실체가 무엇일까.
묻지마 범죄, 잘못된 표현이라고?
정유정 사건을 둘러싼 여러 기사의 제목들을 보며 ’이상 동기 범죄, 무동기 범죄, 불특정인 대상 범죄, 묻지마 범죄‘ 등 비슷한 듯 다른 표현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여러 매체에서도 반영되었듯, 아직 대한 제대로 된 정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묻지마‘라는 표현은 어디에서부터 유래되었을까?
언론은 ’묻지마 범죄‘는 범행의 동기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표현이다. 그러나 범죄 용어는 그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특성을 대변하며, 범죄 유형을 명명하는 것은 범죄자를 유형화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비록 이제까지는 범행의 동기를 뚜렷하게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묻지마‘ 라는 표현으로 통용되었으나, 범행의 동기가 없는 것이 아닌 일반인의 상식 수준에서 범행동기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라는 점에서 ’묻지마‘라는 용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최근 학계에서는 대체 용어로 ’불특정인 대상 범죄‘, ’무동기 범죄‘, ’이상 동기 범죄‘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필자는 언어의 혼용을 방지하고자 앞으로 묻지마 범죄를 이상 동기 범죄로 통용하겠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상동기 범죄자 ’정유정‘의 특성
다시 정리하면, 그녀가 살인을 저지른 동기는 직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그저 살인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둔 그녀를 두고 ’이상동기 범죄자‘ 라고 칭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상식적인 수준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배후에 어떤 일이 있진 않았을까?” 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언론매체에서 제시된 그녀의 삶과 태도를 통해 심리학적으로 이상동기 범죄를 분석해보려고 한다.
① 관계의 결여
정유정은 오랜 시절 동안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와 지내며 생활비에 허덕이는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5년간 무직 상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이후, 경찰 조사 단계에서 그녀의 휴대전화를 조사한 결과 타인과 5년간 아무런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상황은 그녀를 ’은둔형 외톨이‘임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이수정의 ’최신 범죄심리학‘에 따르면, 이상 동기 범죄자의 특성 중 대표적으로 ’외톨이‘의 성향을 지닌다고 한다. 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는 관계망이 끊어졌다는 것은 타인과의 ’연관성, 친밀감, 결합성‘ 등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고립감을 초래한다. 또한, 사회적 고립감은 부정적 스트레스를 불러일으켜 결국 공격적인 행위 혹은 살인에 저지르는 등 적법하지 못한 행위로 이어진다.
② 대중매체를 통한 범죄의 학습
그녀는 인터넷으로 ’살인‘ 등의 문구를 집중적으로 검색했으며, 과외받는 중학생으로 위장하기 위해 중고로 교복을 구매하기까지 하며 굉장히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구석이 있다. 또한, 범죄 수사 프로그램이나 범죄 관련 서적 등을 보며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과연 범죄 관련 미디어 매체 혹은 서적을 통해서도 직접 살인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는 반두라(Bandura)의 사회학습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학습이론이란, 직접적인 강화나 처벌을 받는 방법 이외에 타인을 관찰함으로써 다양한 학습을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는 어린아이가 인형을 갖고 노는 어른의 모습을 관찰한 뒤, 나중에 인형을 가지고 놀 때 어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을 실험으로 증명하며 학습이 오랜 조건화 과정에 의해서 일어나는 고전적 조건화에서 더 나아가 단 한 번의 관찰로도 학습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범죄나 폭력행위를 다룬 미디어 매체 혹은 시청물을 통해서도 쉽게 범죄를 학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았다.
위와 같은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정유정은 범죄 수사물을 통하여 자신의 살인 행위를 미리 상상해 보고 직접 실행해 봄으로써 범죄를 학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 동기, 앞으로의 과제
정유정 사건은 범행의 심각성과 별개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상 동기 범죄였다는 점 그리고 “나도 언젠간 당할지 모른다.”라는 두려움 때문에 이 사건이 더욱 주목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범죄를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고립감 혹은 은둔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 때문에 사회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예방적인 처우가 제대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상 동기의 유형을 더욱 세분화하여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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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범죄, 우리가 애써 피해 오던 것들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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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최승영(2019.4.24.), 한국기자협회, “관행처럼 쓴 ’묻지마’ 수식어, 뜻은 제대로 알고 쓰나요”, http://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6138
박성현(2023. 06. 04). 조선일보. “특별한 동기 없는 ‘정유정 사건’공분... ‘묻지마 범죄’ 대책 없나.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3060415015827182
김기현(2023. 06. 02). 문화일보. ”‘또래살인’ 정유정, 호기심에 묻지마 살해... 전문가 ‘사이코패스’ 성향“.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3060201071027098001
윤정숙 and 김민지. (2013). 묻지마 범죄에 대한 심리적 이해. 한국범죄심리연구, 9(1), 147-174.
안상원. (2021).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고찰 및 성향 분석. 한국범죄정보연구, 7(2), 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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