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전체 일정은 큰 그림으로, 하루 일정은 느슨하게 - 어서 와, 혼자 여행은 처음이지?-8
  • 기사등록 2023-11-23 22:51:36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마르세이유, 프랑스  

아날로그 시대에 여행은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는 일이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접하게 되는 안내 책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인쇄물이라 한번 발행되고 나면 개정판을 찍을 때까지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실제 여행에서 정보가 달라서 곤란을 겪곤 했다. 디지털 시대에 여행 방법은 180도 바뀌었다. 세계 각 도시는 홈페이지를 제작해서 그 매력을 홍보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기차와 저가 항공 운항 스케줄을 손쉽게 조회하고 결제까지 할 수 있다. 입장권은 또 어떤가?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의 집’은 아예 90%가 온라인 발권으로만 이루어지니 거의 온라인으로 입장권이 판매된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홈페이지와 예매 대행 사이트가 있어서 원하는 시간에 관람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여행은 참 편리하다. 단기 여행자는 시간 낭비를 줄여서 동선을 미리 짜는 집약적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 여행도 가기 전에 예약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설치해야 할 스마트폰 앱도 너무 많다. 각 나라의 철도청 앱, 대중교통 앱, 호텔 앱, 입장권 예약 앱 등등. 여행 준비는 스마트폰 앱과의 사투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모든 걸 예약하고 출력 없이 바코드나 QR코드만 있으면 된다. 편리하지만 스마트폰만 들여다봐야 한다. 도시가 주는 풍경과 분위기를 느끼는 건 뒷전이고, 스마트폰 속에 저장된 정보대로 얼마나 잘 따라가고 있는지를 체크한다. 우리가 원하는 게 이런 여행인가? 디지털 시대에 스마트하게 여행하면서도 아날로그 시절의 감성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가능할까?      


준비를 ‘최소’로 하는 것이다. 최소로 준비하면 소중한 시간에 못 보고 놓치는 게 많을까 봐 불안하다. 유럽은 비행시간만 적게 걸려도 왕복 22시간이다.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본다는 게 뭔가? 느끼지 못하면 많이 봐도 의미 없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인파에 둘러싸인 ‘모나리자’를 보지만 돌아와서 모나리자를 다시 보고 싶다거나 모나리자의 묘한 웃음에 끌렸다는 사람을 만나기 드물다. 그저 봤다는 인증으로 모나리자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유명한 그림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은 그 사람이 그곳에 다녀왔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본 걸 나도 봤다는 증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작은 미술관에 가서 나만의 시간과 느낌을 오롯이 관찰했다고 말하는 여행은 어떨까? 이런 여행은 과연 손해 보는 여행일까?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에서는 예매 전쟁도 필요 없고, 동선을 계산하면서 서둘러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비밀 장소를 간직하는 일은 나만 아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한 도시의 진짜 모습은 여행자가 애정을 담고 바라보는 곳에 있다. 


이것저것 할 목록으로 빈틈없는 하루를 계획하면 패키지여행보다 더 힘든 여행이 된다. 여행이 일시 멈춤을 위한 놀이가 아니라 의무로 가득한 일이 되어 버린다. 여행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란 없다. 아무 할 일 없는 곳에 가는 것이 바로 여행자의 일이다. 해야 할 것을 정하고 조바심 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전체 일정에서 느슨한 하루, 또는 빽빽한 하루 중 느슨한 몇 시간을 정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점이 나 홀로 여행의 매력이다. 


가끔은 계획에 없던 엉뚱한 장소에 가보는 것도 여행 후에 잔상을 많이 남긴다. 엑상프로방스에 갔을 때였다. 『이방인』을 쓴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탄생 백 주년 기념 전시회가 동네 도서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200유로짜리 지폐를 주운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횡재한 하루를 자랑하고 싶었다. 경비원 외에는 아무도 없는 입구를 지나서 전시실로 들어갔다. 관람객은 나 혼자였다. 나를 따라 들어온 경비원만이 전시실을 지키고 있었다. 카뮈의 손때가 묻은 메모, 노트, 펜, 여권, 신분증 등을 혼자 독점하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하나라도 더 눈에 넣고 싶었다. 거의 읽을 수 없는 필체로 쓰인 노트와 메모들이었지만, 손글씨를 본 것만으로 카뮈의 비밀을 한 자락 엿본 것 같았다. 


여행자에게 덜 알려진 작은 도시를 전체 일정에 넣어 보자. 오고 가는 법만 알아두고 정보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골목을 거닐어 보자. 소도시나 시골 마을에서 구글 지도를 끄고 걷다가 배가 고프면 밥 먹고, 다리가 아프면 카페에 들어가서 잠시 다리를 쉬는 여정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전체 일정은 이동할 도시를 중심으로 큰 틀에서 세우고, 하루 일정은 느슨하게 세우는 게 좋다. 이동은 적게 하고 여러 도시를 보고 싶으면, 거점 도시를 잡는다.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도시를 찾으면 좋다. 예를 들면 스페인 마드리드를 거점 도시로 잡으면 마드리드에서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을 짜는 것이다. 먼저 마드리드에서 대중교통으로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소도시를 찾는다. 마드리드 근교 도시나 마드리드 근교 소도시로 검색하면 많은 도시를 찾을 수 있다. 중세 성채 도시인 톨레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배경이 된 성이 있는 세고비아, 톨레도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를 간직한 중세 성채 도시 쿠엔카와 아빌라 등 생각보다 많다. 특히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에서 거점 도시를 정하고 근교 도시를 다녀오는 일정을 추천하고 싶다. 근교 도시를 정할 때 ‘왕복 6시간 이내’여야 한다. 왕복 6시간 이상이 걸리면 근교 도시가 아니니 포기하자. 아니면 짐 싸서 그 도시로 이동해서 하루를 보내는 방식으로 루트를 짜면 좋다. 


거점 도시를 정하고 여행하면 안정감이 든다. 아침마다 캐리어를 쌌다가 저녁에 풀어헤치는 일만 안 해도 편하다. 아침에 일찍 출발해서 낮에 낯선 도시를 구경하고 저녁에 익숙한 도시로 돌아온다. 저녁에 거점 도시에 돌아오면 며칠 머무는 호텔은 집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낯선 도시도 포기하지 않고, 익숙함도 챙길 수 있어서 내가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다. 대도시 근교에 있는 도시들은 주로 소도시이고, 소도시에는 대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일단 소도시에 가면 대도시의 번잡함과 속도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자유롭다. 소도시 중심가는 작아서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기 좋다. 작은 도시에서는 탈것에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걷기만 해도 여행의 결이 달라진다.      


이런 식으로 루트를 만들면 예약할 기차와 버스가 대충 나온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7205
  • 기사등록 2023-11-23 22:51:36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