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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아실라, 모로코. 모로코에서 구하기 힘든 맥주!  

모로코 여행 준비를 하면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건 이슬람 국가에 대한 편견이었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모로코 골목에서 ‘강탈자’ 주의보를 찾아 읽었다. 어디선가 나타나 캐리어를 낡아 채고, 돈을 요구당한 사람들이 써 놓은 경험담을 읽었다. 테러리스트에 돈까지 요구한다고? 


부정적인 타인의 경험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벗어던지는 데 얼마 안 걸렸다. 강탈자로 여겼던 이들은 미로 같은 골목에서 캐리어를 옮겨주며 길을 안내하며 소일거리를 했다. 적당히 흥정하면 적은 돈으로 짐도 옮겨주고 길도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출발 전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음료는 맥주와 커피이다. 주스나 탄산음료를 마시는 일은 연례행사쯤 된다. 대신에 커피와 맥주에 대한 애정은 태평양만큼 깊고 넓다. 두 음료에 대한 내 집착으로 위통과 일 년 내내 밀당 중이다. 둘 다 위벽을 자극하는 음식인 탓에 위의 존재를 느끼는 감각이 발달했다. 위 운동을 주시하며 변덕스러운 움직임을 포착한다. 위 언저리가 서서히 찌릿찌릿하면 곧 위통의 전조이다. 제멋대로 움직이겠다는 위를 어르고 달래며 두 음료를 사수하려는 노력을 십수 년째 하고 있다. 


위가 아무리 앙탈을 부려도 많이 걸은 후에 체세포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애타게 찾는다. 맥주는 떨어진 당 보충도 하고, 목도 축이는 혈액 속 산소이다. 모로코에서는 생명수나 다름없는 맥주를 구경하기 힘겨웠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술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탓이다.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식당이나 바를 찾기 어려웠다. 하루 이틀은 참을 수 있지만, 여행 내내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점점 맥주 헌터가 되어갔다. 어떤 일에는 줏대 없이 바로 포기하지만, 어떤 일에는 DNA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근성을 끌어낸다(고 쓰고, 집착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카사블랑카에서였다. 혼자 여행하는 재미 중 하나는 저녁에 호텔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후 맥주 한 캔 홀짝이다 스르륵 잠드는 것이다. 호텔 냉장고에도 꺼내거나 아무 마트나 편의점에 들어가서 냉장고에서 꺼내 계산만 하면 되는 일을 ‘알라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모로코에서는 술을 파는 마트가 따로 있었다. 호텔 근처에 물과 주전부리를 사러 들어간 큰 마트 한쪽에서 늠름하게 써진 ‘리쿼’ 코너를 발견했다. 길 가다 아무 기대 없이 로또 한 장을 샀는데 4등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당첨금 5만 원은 큰 액수는 아니지만, 기대하지 않은 돈이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저절로 귀까지 질주하는 기분이랄까. ‘좋았어! 오늘 저녁에 와서 사겠어.’      



하루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들어가기 전에 아침에 찜해둔 마트에 들렀다. 가슴은 부풀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매장을 가로질러 아침에 침만 바르고 간 과녁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돌진했다. 하지만 뜻대로 된다면 인생도, 여행도 아닐 터. 리쿼 코너에는 자바라 문이 내려와 굳게 잠겨 있었다. 오후 8시까지만 술을 살 수 있는 걸, 몰랐다. 간발의 차이로 맥주를 마실 기회를 날려버렸다. 자바라 틈으로 늠름하게 쌓여있는 맥주 캔과 병이 보였다. 의기양양했던 나를 약 올리는 것 같았다. 너무 먼 당신, 맥주였다. 낯선 도시에서 ‘나중에’는 없다는 법칙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고 싶은 건 봤을 때 사는 게 진리인데 진리는 슬프게도 항상 지나고 난 후에야 뼛속에 스민다. 


그 순간 절실했던 것은 많은 술이 아니라 그저 맥주 한두 캔이었다. 유럽에서는 맥도날드에서도 마실 수 있는 맥주이건만 모로코에서는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어쩌다 트립어드바이저에 별점 높은 식당, 다시 말하면 외국인이 주로 가는 식당에서는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모로코는 분명히 살기 좋은 나라지만, 내가 살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맥주 덕후는 맥주를 구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살 수 없다. 


호된 금주령으로 알코올 보충을 해야 할 때가 넘어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드라큘라 백작이 제때 피를 공급 못 받으면 창백해지듯이, 이런저런 실패를 거듭하면서 맥주에 대한 갈망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식당에 가도, 카페에 가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지 매의 눈으로, 그러나 은밀하게 살폈다. 호텔 로비나 라운지에 보통 바가 있기 마련인데 내가 머문 호텔은 규모가 작지 않은데도 바가 없었다. 대신에 호텔 건물 바로 옆에 맥주를 파는 술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저녁마다 호텔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빼고 ‘바’를 스캔했다. 풍채 좋은 남자 두 명이 양복을 입고 입구에 서 있었다. 모로코 남자들은 대체로 콧수염을 기른다. 숱이 많고, 짙은 검은색 콧수염은 나이 불문하고 위엄있어 보였고 동시에 위협적으로 보였다. 물론 전적으로 편견이지만 말이다. 일단 바에 들어가려면 양복 입은 풍채 좋은 두 남자 사이를 지나야 했다. 문지기는 그 자리에 그냥 있을 뿐이다. ‘문을 통과할지 말지는 내 선택에 달려있었다.’ 카프카의 <성>이 떠올랐다. 주인공 K에게 문지기가 한 말이었다. 맥주 한 잔 마시는데 카프카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절실했다. 나는 K처럼 문지기의 아우라에 압도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디데이를 마지막 날 밤으로 잡았다. 집에 돌아오기 마지막 날 저녁, 샤워 후 책을 챙겼다. 어두운 바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순 없으니 책을 챙겼다. 나는 여행지에 어울리지 않는 책을 챙겨가는 데 일가견이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쓴 <봉인된 시간>을 담아갔는데 노란 표지에 예스러운 한문으로 제목이 쓰인 책이었다. 좋아하는 책이지만, 이 순간에는 어쩐지 치즈 안주에 소주를 먹는 기분이었다.     


샤워 후 책을 손에 들고, 무거운 마음으로 두 콧수염 아저씨 사이를 뚫고 태연하게 인사했다. 낮 동안 카페에도 콧수염 짙은 아저씨들이 주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 틈에 끼였고, 여자는 나 혼자일 때가 많았다. 모로코에서는 여성들이 사람을 대하는 일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내가 손님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은 뜻밖에 앳된 얼굴이었고,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홀 안은 어두컴컴했다. 둘러보니 또 다른 콧수염 아저씨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식당 있어야 어울릴 법한 둥글고 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목에 브이라인이 깊게 파인 스웨터를 입은 언니가 다가왔다. 음악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커서 주문하려면 언니의 귀에 내 입술을 대고 말해야 했다. 다행히 언니는 상냥했다. 술꾼처럼 보일까 봐 주의하면서 맥주 한 병을 주문한 후 책을 폈다. 책에 눈을 두는 척했지만, 실은 맞은 편에 혼자 앉아 있는 콧수염 아저씨를 관찰했다. 그는 꼿꼿하게 앉아서 잔을 비웠다. 부동자세로 허공을 바라보다 다시 한 잔을 비웠다. 나처럼 알코올 금단 증상으로 혼자 바를 찾겠지?      


술이 엄격히 통제되는 자장에서 알코올에 가서 붙어버리는 강력한 자석을 가지고 태어나면 비극이 아닐까. 꼭 술꾼이 아니어도 고작 술 한 잔 마시는 데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인지, 콧수염 아저씨는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영화 속에서나 봤던 도시 ‘카사블랑카’에서 쓸쓸한 얼굴로 맥주를 홀짝이는 존재. 콧수염 아저씨에게 뜨거운 용암처럼 연민이 흘렀다. 음악이 찰랑거리는 어두운 바에서 나는 마침내 맥주 한 병을 손에 쥔 사냥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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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2-28 1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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