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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진현 ]


똑.딱.똑.딱. 탁구공이 두 개의 탁구채 사이로 현란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탁구대에 공이 튕기며 내는 경쾌한 소리는 왠지 흐릿해진지 오래다. 팔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다리는 알아서 공이 올 위치로 움직인다. 탁구공의 소리와 함께 탁구대마저 시야에서 사라진다. 나와 탁구공, 단 둘의 싸움이다. 상대가 실수했다. 공은 높이 떠오르며 내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온몸으로 채를 휘두른다.


과거 학교 탁구 대표팀으로 출전했을 때의 짧은 순간이다. 내가 경험한 가장 완벽한 몰입이었다. 물아일체라 해도 무방하겠다. 그 짧은 순간의 행복감과 경쾌한 리듬은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집중이라는 아이콘


바야흐로 집중력 상실의 시대이다. “성인 ADHD”가 이슈로 떠오르고 서점의 베스트셀러 칸에는 언제나 <도둑맞은 집중력>이 우두커니 꽂혀있다. 스마트폰의 출시와 함께 “멀티태스킹”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능력처럼 등장하고, 우리는 멀티태스킹의 마법에 매료되어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가진다. 



집중력은 도대체 왜 화두의 중심이 되었을까? 직관적으로는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과제들을 처리하기 위함이겠다.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 하나를 끝내면 또 생기는 업무는 우리로 하여금 눈앞에 놓인 것을 빨리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집중력은 기대보다 낮고, 그와 동시에 업무 수행력은 더욱 낮아진다. 생각해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뒤에 놓인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고자 하면 이미 우리 집중은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니라 그 이후가 아닌가.


물론 업무 수행력을 위해 집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집중하고 싶어하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집중할 때의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행복 속 몰입, 몰입 속 행복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세계 2차대전 당시 수용소에 갇혀있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체스에 집중하며 지냈다. 이때 칙센트미하이는 과거 탁구를 치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느꼈다. 체스를 통해 주변의 고통과 슬픔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 향후 그는 이를 “Flow”, 즉 몰입이라 일컬었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이 몰입은 어떤 행위에 그 자체로서 온전히 집중하여 자아마저 잊게되는 상태이다. 탁구대와 상대가 희미해지고, 주변의 슬픔이 흐릿해지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최고의 순간들은 어렵지만 의미있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 개인이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한계까지 밀어붙였을 때 나타난다.” 즉, 칙센트미하이는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으며, 그 정점은 몰입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몰입의 특징


그렇다면 그냥 집중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칙센트미하이가 원하는 몰입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해당 행위가 충족해야 하는 몇가지 요건들이 있다.


- 완전한 집중

- 행위의 난이도와 능력 간 균형 (특히 둘 다 높을 때)

- 명확한 목표

- 즉각적 피드백

- 시간의 왜곡

- 내재적 동기

- 행위에 대한 통제감

- 자아 상실

- 현재의 걱정들을 없애줄 만한 수월함


위 요건들에서 엿보이듯이, 몰입에서 중요한 것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의 제거이다. 탁구를 잘 치고 있다가 갑자기 행위를 의식하며 집중력이 깨진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 탁구공은 상대편 진영에 닿지 못한다. 




행복에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목적적 인간



이 몰입의 상태는 비단 탁구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포츠를 넘어 일, 심지어는 인간관계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고 칙센트미하이는 주장한다. 궁극적으로는 이 몰입의 상태를 통해 어떤 행위든, 어떤 어려움이든 비교적 평온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것이 곧 행복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 도달한 사람을 칙센트미하이는 “자기목적적 인간”이라 부른다. 이런 상태는 현자들만 도달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사람이든 자기목적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기목적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명확하고 빠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 뒤에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위에 몰두해야 한다. 그 과정에 들어섰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그 자체로서 즐겨야 한다. 하지만 어떤 행위를 하다보면 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난이도와 능력 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난이도를 높이고, 또 높아진 난이도에 능력을 맞추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몰입 상실의 시대


난 탁구를 치며 느꼈던 몰입 이후 그정도의 몰입을 느낀 경험이 없다. 그 전에는 레고 세트를 완성하며, 혹는 영어 단어를 외우며 느꼈던, 생각보다는 흔히 느꼈던 몰입감이었다. 요즘에는 똑같이 레고를 만들고 단어를 외우려 해도 자꾸 잡생각이 든다. 이 몰입의 상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우리는 수많은 방해물들로 인해 몰입을 하지 못한다. 그것이 스마트폰이 됐든, 성과에 대한 압박감이든, 우리는 몰입의 상태에 들기 쉬운 환경에 있지 않다. 칙센트미하이와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쾌락과 행복을 엄격히 구분했다. 쾌락은 감각적, 감정적 영역에 속한다면 행복은 나 스스로를 잊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데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점차 휴대폰 속 세상의 쾌락 때문에 몰입을 방해받고, 그리하여 행복은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행복감이 없을 때,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누워서 빈둥대고 싶어한다. 힘든 일에 쏟아부은 노력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 의지일 것이다. 물론 셀리그만과 칙센트미하이도 이런 쾌락들이 행복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쾌락과 몰입의 균형만큼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니 집중하고 또 몰입하라. 흐름을 탄다면 그 몰입은 노동에서 행복으로 치환될 것이다.




참고문헌

Oppland, M. (2024, March 18). 8 Traits of Flow According to Mihaly Csikszentmihalyi. PositivePsychology.com. https://positivepsychology.com/mihaly-csikszentmihalyi-father-of-flow/ 

Mihaly Csikszentmihalyi. Pursuit of Happiness. (2023, April 10). https://www.pursuit-of-happiness.org/history-of-happiness/mihaly-csikszentmihal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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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6-13 19: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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