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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박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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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는 종강 이후 삶에 큰 무료감을 느꼈다. 지난 3월부터 과제와 시험공부, 학보사와 대외활동을 병행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왔기에 종강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종강을 하니 기대만큼 즐겁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 힘들었으며 오히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누워있는 스스로가 한심할 지경이었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의 책 〈인생의 열 가지 생각〉은 필자의 삶에 곧 하나의 지침서가 되었다. 

 


가난


수녀원에는 개인 소유의 물건이 거의 없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물건이니 모두가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일상이다. 가령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성경에 볼펜 대신 연필로 이름을 써놓는다. 이는 언젠가 자신이 성경을 두고 떠날 때 누군가 이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수도회에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뜻과 이익, 욕망 등을 모두 포기한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물건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가난한 마음을 추구하기 위해 힘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죽음의 길로 향하는 순례자이기에 그들의 삶에는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쟁취하고자하는 비싼 차, 넓은 집, 좋은 옷이 인생 전반에 있어 가장 쓸모없는 요소일 수 있다. 다만, 이를 알고 있음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가 우리와 수도자의 궁극적인 차이가 아닐까. 

 

단, 무조건적인 가난의 추구 또한 옳지 않다. 오히려 무소유에 집착해 스스로의 삶을 옥죄는 강박을 갖는다면, 이 또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에 이해인 수녀는 부드럽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온전한 가난을 위해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온전한 가난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나눔’이다. 자꾸만 물건이 쌓이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물건은 덜어내고 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꾸준한 노력이 행해질 때, 인생에서 가장 고요한 마음의 평화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쁨


누군가 내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쁨을 느끼냐고 묻노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 친한 친구와 여행할 때, 글을 쓸 때와 소중한 이에게 편지를 부칠 때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바쁜 일상에 지쳐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친구와의 여행 계획을 미루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이 아닌 의무감에 얽매여 억지로 글을 쓸 때 필자는 가장 큰 절망감을 느낀다. 

 

이해인 수녀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기쁨을 다시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서 눈을 뜨는 것, 신발을 신는 것, 하늘과 바다와 꽃을 보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 ‘기쁨’이라고 말했다. 살아서 누리는 평범하고 작은 기쁨들, 마음의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작은 행동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내적 기쁨을 형성한다. 

 

매일 좋고 특별한 일이 있어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쁨은 저절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닌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력해서 찾아내야 하는 덕목일 수 있다. 오늘 하루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했더라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겨 먹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고, 친구와의 여행은 당장 가지 못하더라도 그와 꾸준히 연락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고, 내가 쓴 글로 누군가가 영감이나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껴야겠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일상 속 사소한 행복과 기쁨의 가치를 알릴 수 있을 때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로


위로(慰勞)란 따뜻한 말 또는 행동으로 타인의 괴로움과 슬픔을 덜어내는 일이다. 현자에게도 진심을 다해 위로하기란 어렵다. 사실상 본인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아픔과 시련을 겪는 당사자의 마음을 온전히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도 내일 당장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암 환자의 마음,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아픔, 직장에서 정서적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친 청년의 고통을 대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위로받기를 갈망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의 아픔과 비극, 슬픔을 공유함으로써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담긴 거창한 위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며 자신의 부족함과 아픔을 드러내고 이를 함께 나눌 때 위로는 시작되고 누군가의 인생에 버팀목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건네 온 위로는 모두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리기보다 그들을 향한 동정일 수 있다. 혹은 상대에게 위로를 건넴과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부끄러운 생각을 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로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늘도 상대의 입장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 한계를 받아들이며 겸손한 마음, 그리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상처받은 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맺으며


누구보다 간절하게 의미 있는 삶을 추구했던 필자가 자기 계발서가 아닌 한 수녀의 에세이를 읽은 이유는, 삶의 목표보다 본질에 다시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옆을 볼 수 있는 여유와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다시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중 가난, 기쁨, 위로의 가치는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이해인, 「인생의 열 가지 생각」, 마음산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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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7-16 08: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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