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한국심리학신문=김진현 ]
나는 외국에서 태어나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왔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기도,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는 더 얕은 관계를 맺고 더 불안한 생활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게 됐다. 바깥과는 단절되었지만 또 그만큼 풍부한 세상이 내게는 영화였다.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또 그런 인물들을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를 알게 된다. 말 그대로 “간접 경험”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와 심리학은 가깝다. 그래서 심리학에도 빠져들게 되었다.
심꾸미를 찾다
그러다 군대에 갔다. 친구들이 학교생활을 하고 진로를 찾고 여행을 떠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답답했다.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자신의 모습 간의 간극은 컸다. 그래서 끝없이 군대에서 할만한 활동들을 찾아나서고 있던 그때, 심꾸미가 찾아왔다.
평소 글을 쓰는 것도, 심리학도 좋아하던 내게 심꾸미는 혜성같이 등장했다. 기간도 적당했고, 내용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였다. 꾸준히 작성하며 새로운 주제를 찾아나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하는 경험들도 해야했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는 작성 명분이 없었고, 참신한 이야기는 만들기 어려웠다. 힐링되는 내용이었으면 하는 동시에 차가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결국 그 중간을 찾아나갔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12개의 기사가 쌓여있었다.
내 기사들에는 영화 이야기도, 심리학 이야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이야기가 담겨야 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내 경험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 생각들을 녹아내려 애썼다. 실패라 생각했다. 몇몇 기사들은 내가 꼭 쓰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또 다른 기사들은 그저 주제를 찾느라 급급하여 아쉽기도 했다.
시간은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12개의 기사들을 모아놓고 보니, 왠지 그 12개의 장면들은 하나의 영화가 되어있었다. 각 장면은 그 자체로서 이해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장면들은 쌓여나간다. 그러다 전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전체를 보면 작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나는 그게 삶이라 생각한다. 현재로선 이해되지 않는 나의 모습이나 생각들이 어느새 나인 것이고, 지금은 장면 뿐인 것이 언젠가 한 편의 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이별은 찾아온다. 숱한 이별을 겪어온 내게 자명한 사실이다. 영화는 끝나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왠지 심꾸미 활동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나 자신을 알게 해주고 또 그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이렇게 떠나보내다니. 왠지 쿠키영상이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일단 지금은 영화관에 불은 켜졌고 크레딧 롤은 오르고 있다. 영화가 끝난 그 이후의 일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생각한다. 혼자 집으로 걸어가며 “오늘의 등장인물은 과연 어떤 내일을 살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심꾸미와 한국심리학신문은 내가 이별한 후에도 계속 어떠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관에 함께 앉아있던 다른 심꾸미 9기 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장면은 이별이다. 컷이다. 오케이다. 이젠 다음 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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