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정
[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세상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력감을 느낀다. 회의감에 빠져 ‘과연 세상은 살 만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도 있다. ‘과연 인생은 살 만한 것인가’, ‘세상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인생 전반의 가치를 묻는 이 허무하고도 어려운 질문을 하나의 화두로 여러 이야기들을 한데 엮어 풀어가는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영화 <세븐>이다.
과연 어떤 세상이 살 만한 세상인가 – 영화 <세븐>
영화 <세븐>(1995)은 데이빗 핀처가 감독하고 앤드루 케빈 워커가 각본을 맡은 할리우드의 스릴러 영화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7대 죄악을 모티브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할리우드 특유의 인물 중심의 내러티브가 돋보이는 것이 장점이다.
주인공 윌리엄 서머셋(모건 프리먼)은 은퇴를 일주일 앞둔 베테랑 형사다. 그는 사건 현장을 둘러보다 새로 부임해 온 형사 데이비드 밀스(브래드 피트)와 만난다. 밀스는 아내 트레이시(기네스 펠트로)와 함께 도시로 온 혈기 가득한 열혈 신참으로, 둘은 처음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형사는 괴상한 사건을 마주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 괴상한 사건이란, 바로 7대 죄악을 모티브로 월요일부터 한 건씩 발생하는 연쇄 살인이다. 서머셋과 밀스는 수사 중 범인의 이름인 ‘존 도’와 그의 사는 곳을 알아내지만 코 앞에서 범인을 놓치고, 한편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범죄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도시에서 아이를 키워도 될지 고민한다.
주인공 형사 콤비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과 아내 트레이시의 고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앞서 이야기했던 ‘과연 세상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의 일환이다.
영화 <세븐>(1995) 스틸컷. Imdb.
회의감의 원인은 바로 무관심한 세상
영화의 중반까지는 사건 자체의 잔혹함에 관객들이 충격을 받고 범인의 정체가 드러남을 기대하며 서스펜스가 진행된다면, 후반부에서는 범인 ‘존 도’가 직접 두 형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장면들로 진행되기에 관객들은 다소 새로운 고뇌에 직면한다. 존 도가 경찰서에 피범벅인 채 들어와서는 큰 소리로 두 형사의 이름을 부르며 자수하는 장면은 극의 진행이 추적 스릴러에서 수사물로 전환되는 부분이며, 극의 핵심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작품의 메인 주제인 ‘사회의 유효함에 대한 회의’의 원인이 바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직접적으로 꼬집어 이야기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피투성이인 의문의 남자가 경찰서에 들어가도 사람들은 그에게 무관심하다. 소리를 지르고 자수하러 왔다고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인식한다.
그렇다고 존 도의 범행이 자연스럽거나 올바른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가 자수한 뒤로, 병적인 논리를 두 형사 앞에서 펼치는 장면이 꽤 길게 이어진다. 존 도의 논리가 병폐적인 이유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건 물론이거니와, 마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함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범행은 그 비판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타인에게 무관심한 건 마찬가지다. 그는 쓰레기 같은 존재들을 단죄했다며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결국 본인도 자신이 죽였던 타인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비만’, ‘탐욕스럽고 비윤리적인 변호사’, ‘병을 옮기는 창녀’로만 판단하고 낙인찍는다. 존 도와 두 형사는 ‘세상이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과, 허무한 감각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질지는 몰라도 그 두 축이 원하는 ‘정의’는 서로 다르고 한 쪽의 병폐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손실되는 사회의 에너지는 너무 크다.
회의감의 극복을 위하여
영화는 마지막 살인과 복수로 끝나는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서머셋의 마지막 대사는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한 “‘세상은 멋진 곳이며,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난 후자에 동의한다.”로 끝난다. 그는 오랜 형사 생활 동안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세상은 멋진 곳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게 됐지만, 그래도 살아가며 투쟁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서머셋의 태도는 최근 떠오르는 허무에 대한 시각인 ‘낙관적 허무주의’를 연상시킨다. 삶의 무상함, 허무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투쟁하기를 택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건강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투쟁이란 억압받는 이들의 삶의 요구를 성찰해보는 것이다. 목소리가 지워지기 쉬운 이들의 일상과 삶을 조명하는 일은 영화 <세븐>에서 줄곧 이야기해왔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걸음과도 같다.
참고문헌
1)David Pincher. (Director). (1995). Se7en[Film]. NEW LIFE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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