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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신경민 ]




우리는 몇 차례의 큰 재난과 참사들을 기억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그날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뉴스를 봤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떤 한 사회의 재난은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과 아픔을 남긴다. 

 

그만큼 그러한 재난을 보도하는 언론들은 막중한 책임감과 영향력을 갖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TV 뉴스, 인터넷 기사와 같은 언론 및 미디어가 바로 사람들이 재난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가장 우선적이고 주요한 경로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하여 피해자 가족의 오열과 같은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및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를 지양하고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는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 보도가 피해자에게 PTSD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뉴스를 접하는 시청자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접하고 단순히 충격을 받는 것을 넘어, 정신과학 분야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각종 재난에 간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침습, 회피, 과도한 각성 등과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의 단기적인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처럼 간접 노출에 의해 PTSD 증상을 겪는 것'간접 외상'이라고 한다. 




간접 외상: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PTSD를 겪을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익숙하게 들어본 PTSD는 원래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충격과 후유증으로 인해 심각한 부적응 증상을 나타내는 정신 장애를 뜻한다. 정신질환 진단의 대표적인 기준이 되는 DSM-5에 따르면, 소방관과 같이 재난 및 외상 관련 직업을 가지지 않는 이상, 미디어를 통한 노출은 외상 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외상 사건을 직접 경험한 후에 PTSD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911테러, 항공기 사고, 오클라호마 폭발 사건 등 다양한 참사와 관련된 연구에서는 실제 재난 뉴스 시청이 PTSD 유발 가능성을 높이고, 심각한 정신적 외상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재난 뉴스에 노출되는 빈도가 몇 년 후의 PTSD 증상의 증가와 신체적 질병의 발생을 예측한 연구 결과가 있으며, 많은 국외 연구에서 재난 뉴스를 시청한 시간이 많을수록 더 큰 심리적 스트레스와 더 강한 PTSD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공식적으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미디어를 통한 간접 노출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내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연구들은 대부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이루어졌는데, 관련 뉴스에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스트레스, 우울, 신체 증상, 불면, 자살사고, 불안, 공격성과 같은 부정적 정서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고 PTSD 증상을 더 많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미디어에 의한 간접 외상은 직접 외상만큼 강력하지는 않고, 사회적 재난의 경우 약 2개월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 회복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간접 외상으로 인한 증상들이 일반 PTSD 환자들이 겪는 것과 유사하고, 특히 초기의 뉴스 노출이 정서적 충격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간접 외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외상에 PTSD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일까?




간접 외상의 심리적 기제 ➀ 죽음 불안



간접 외상의 첫 번째 심리적 기제는 '나도 갑자기 죽을 수 있겠구나'와 같은 죽음에 대한 불안, 즉 '죽음 불안'이다. 죽음은 무기력, 통제력 상실, 무의미에 대한 두려움, 허무함 등의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강력한 공포다. 

 

재난 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면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도 한순간에 죽음에 이를 수 있겠다는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러한 불안함이 세상이 안전하다는 신념을 위협하고, 결국 불안에 안정적으로 대처하는 기능이 상실될 수 있다. 직접 외상의 경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협에 직접적으로 직면하지만, 간접 외상에서는 타인의 외상이 죽음에 대한 '단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한 국내외 연구들에서 뉴스 시청을 통해 죽음 불안이 증가할 수 있음이 밝혀졌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PTSD 증상과 정적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죽음 불안은 불안 민감성이 높을수록 더욱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심리적 기제 ➁ 정서 전염


 

간접 외상의 두 번째 심리적 기제는 '정서 전염'이다. 정서 전염이란 타인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수렴하는 것, 즉 타인의 정서에 동일시되는 현상이다. 

 

재난 상황에서는 뉴스의 시청자들에게 현장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피해자 및 유가족들의 모습과 정서까지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비극적 사태에 대한 공감과 부정적 정서가 미디어를 통해 집단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정서가 그대로 전염되는 것을 넘어서,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의미 해석과 추론과 같은 사회적 평가가 정서의 확산에 더욱 기여할 수 있다. 




심리적 기제 ➂ 정서적 각성


 

간접 외상의 세 번째 심리적 기제는 재난 뉴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으로 인한 '정서적 각성'이다. 미디어를 통해 재난에 대한 소식을 반복해서 접하는 것은 급성 스트레스 요인을 지속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고, 재난과 관련한 생각을 생생하게 유지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렇게 뉴스에 몰두할 경우 자신의 유사한 외상 경험, 즉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외상 사건 영상을 보여 주었을 때, PTSD와 관련된 핵심 과정인 뇌의 공포 회로가 활성화되었으며 핵심 증상 중 하나인 섬광 기억(정서적 각성을 일으키는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나타났다.

 

미디어를 통한 간접 노출로 인해 공포 회로가 활성화되어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에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게 되면서 간접 외상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 각성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를 접했을 때 더욱 강화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종이 및 인터넷 신문보다 소셜미디어와 TV를 통해 뉴스를 접했을 경우 간접 외상에 의한 PTSD 증상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소셜미디어와 TV 뉴스가 영상 등을 활용해 훨씬 생생한 뉴스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재난 현장의 모습이나 관련 소식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크기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재난 상황에서 미디어를 통한 뉴스 노출은 재난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강한 정신적 충격과 외상을 안겨줄 수 있다. 이러한 미디어 노출의 부정적인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과 언론 및 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먼저, 재난 상황을 인지하고 애도를 보내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일상에 관련 뉴스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뉴스 노출을 줄이는 것이 좋다. 또한, 전문가들은 만약 자신이 너무 뉴스에 몰두하고 간접 외상을 경험할 만큼 정서적 충격이 심각하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개인적인 노력과 더불어 언론은 끔찍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도하거나 유가족과 같은 사건 관련자의 괴로움을 부각하지 않으려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국내 언론들은 몇 차례의 참사 때마다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인 보도로 기본적인 보도 윤리를 지키지 않는다며 비판을 받았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는 13곳의 언론사가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주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언론은 뉴스가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미디어가 계속 발달함에 따라 더욱 생생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점점 더 쉽고 빠르게 노출되고 있다. 그러한 자극적인 장면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무분별하게 퍼지지 않도록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또한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권석만. (2013). 현대 이상심리학. 서울: 학지사.

2) 박노일, 장석환, 정지연. (2018). 미디어 이용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논문지, 19(4), 673-683.

3) 박상의, 정유지, 이정현. (2018). 미디어 노출에 의한 간접외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에 미치는 영향:온라인 설문 조사 연구. 대한불안의학회지, 14(2), 71-79.

4) 오상훈. (2023.03.16.). 뉴스 시청만으로 PTSD에 시달리는 사람들 [살아남기]. 헬스조선.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3/15/2023031502185.html

5) 유지웅. (2022.12.13.). 자극적·선정적 제목과 사진·영상...신문윤리 저버린 '참사 보도'. 평화뉴스. https://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71

6) 이흥표, 최윤경, 이재호, 이홍석. (2016). 세월호 뉴스 노출을 통한 간접 외상의 심리적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2(3), 41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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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1-23 15: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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