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수
[The Psychology Times=이연수 ]
완벽하게 제출해서 만점을 받았던 과제, 날짜를 착각해서 아예 제출하지 못했던 과제. 둘 다 당신의 과제라면 어떤 과제가 더 기억에 남나요? 아마 전자는 만점이라는 점수가 먼저 기억날 것이고, 후자는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던 과제의 내용이 기억날 것입니다. 더 오랜 시간 공들여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자의 과제 내용은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기억에 잘 남는 경험을 떠올려 보면 대체로 순탄하게 흘러갔던 일보다는 어려움이 있었거나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을 겁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짝사랑이 유독 다른 사랑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것도 똑같은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끝맺음 되지 못한 일이 더 잘 기억되는 걸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미완성 효과’라고도 합니다.
중단되어야 더 잘 기억된다고?
1927년, 리투아니아 심리학자 블루자 자이가르닉은 한 식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문받는 종업원을 보게 됐는데, 그는 복잡한 주문에도 순식간에 메뉴 암기를 해냈습니다. 그걸 본 자이가르닉은 어떻게 그렇게 빠른 암기가 가능하냐고 물어봤고 종업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서빙이 끝날 때까지만 기억합니다. 이미 계산도 끝났는데 제가 그걸 왜 기억해야 합니까?”
이 말을 들은 자이가르닉은 끝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력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하게 됩니다. 두 집단의 표본을 구하고, 다양한 과제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다만 A 집단은 과제를 완성하게 했고, B 집단은 도중에 중단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실험 결과, A 집단에 비해 B 집단은 과제를 더 잘 기억해 냈습니다. 하던 일의 흐름이 끊기니 뇌에서 더 적극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로 나오게 된 효과가 바로 심리학자의 이름을 딴 자이가르닉 효과입니다.
마케팅에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이용된다
미완성된 일을 더 잘 기억한다고 해서 이 효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케팅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촬영이 끝난 드라마를 한 번에 공개하지 않고, 매주 한두 편씩 공개하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시청자들은 내용의 흐름이 중간에 뚝 끊겨버리니 다음 화가 나올 때까지 내내 전 편의 내용을 기억하고 다음 화를 기다리게 되는 겁니다. 웹툰이나 웹소설도 같은 맥락입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볼 때도 탈락자 발표 전 60초 후에 공개하겠다고 하거나 광고를 보고 오겠다고 하는 것도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굳이 생방송을 보지 않더라도 나중에 검색하면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지 못한 채로 시청을 멈추는 건 계속 신경 쓰이고 찝찝한 감정을 들게 합니다. 이 감정을 이용하여 방송사에서는 남은 방송 시간과 상관없이 중간중간 다른 주제로 흐름을 돌려 시청자들을 끝까지 잡아두는 것입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로 일상을 바꿔보자
마케팅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유독 암기가 잘되지 않는 게 있다면, 환경에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매일 집에서 공부한다면 일주일에 하루는 카페나 도서관처럼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간다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공부한다면 가끔은 주스를 마셔보는 것처럼 사소한 거라도 괜찮습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는 것 자체로 더 기억에 잘 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재난이나 심리적 외상을 겪은 경우에는 해당 사건에 대한 기억이 완결되지 않아 계속 반복되어 일어나는 듯한 재경험(flashback)을 하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기억을 완결시켜 주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뇌에서는 끝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잊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끝났다고 인지하도록 말이라도 “이 일은 이제 끝이야!”라고 하며 뇌에서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도록 하면 됩니다.
앞으로는 이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용하여 잊고 싶은 일은 빨리 잊고, 기억하고 싶은 일은 더 오래 기억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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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동귀,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심리편”, ㈜북이십일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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