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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손미리 ]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들 수 있다. 이는 전쟁, 재난, 사고, 폭력 등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정신적 외상으로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잘 기능하며 살아가는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 달리 트라우마를 경험한 청장년층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의 청년 및 장년(20~50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청장년 응답자의 89.9%가 22개 유형의 트라우마에 대해 일생 동안 적어도 1개 이상 경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 꽤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서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외상을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외상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자기(self)를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내면가족치료체계(IFS)를 활용한 치료방법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나를 상실하게 만드는 수치심



보스턴 의학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인 베셀 반 데어 호크는 그의 저서 『몸은 기억한다』에서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일 중 하나는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에 관한 수치심과 대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전쟁 상황에서 자신이 적에게 잔학행위를 한 비윤리적인 행동이든, 학대받는 아동이 가해자를 회유하려고 애쓰는 타당한 행위이든 마찬가지다. 


이처럼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 수치심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으며 그 당시 자신이 느낀 두려움, 의존성, 흥분,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극도로 경멸한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원인이 가해자에게 있든, 자신에게 있든 상관없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그 누가 입에 올리지 못할 일을 경험한 후 자기 자신과 타인을 믿는 일이 쉬울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는 과거와 같이 창피한 일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자신을 통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느껴지거나, 지난 트라우마가 드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쇼핑, 음주, 게임에 중독되거나 충동적으로 불륜 관계를 맺고 강박적으로 일과 운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내 안의 관리자, 추방자, 소방관

내면가족체계치료에서는 위와 같이 트라우마로 인한 수치심을 통제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등의 활동을 내면체계 부분들 간의 관계체계로 보았다. 이는 가족의 역동성과 유사하다. 각 부분들이 모여 시스템을 형성하고, 한 부분이 변하면 다른 부분들에도 영향을 주므로 시스템 전체도 변할 수 있다고 본다.


내면체계 부분들이 하는 역할에 따라 관리자, 추방자, 소방관의 세 범주로 크게 나눈다. 관리자 부분은 보호와 관리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비판적이고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며 그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거나, 물불 가리지 않고 무조건 생산성을 추구한다.


추방자 부분은 과거에 상처를 받거나 수치를 당한 경험에서의 상처받은 감정적 기억을 깊이 감추어 두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기억과 감각, 믿음, 감정이 저장되어 있는데, 만약 이 부분이 관리자 부분을 제압하게 된다면 자기 시스템 전체에 거부당하고 허약하고 사랑받지 못해 버려진 아이만 덩그러니 남는다. 그러나 추방자를 가두어 버린다면, 기억과 감정은 물론 트라우마로 가장 많이 상처 입은 부분들까지 다 몰아내는 것이 된다. 원래 생긴 상처에 자기 자신이 자기를 거부했다는 모욕감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추방자로부터 나오는 감정의 불을 끄기 위해 행동을 취한다. 이는 긴급상황에 대응하는 역할로 추방된 감정을 떠올리는 경험을 할 때마다 폭식, 음주, 자해와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 


내면가족체계치료에서는 이 세 가지 부분들을 무시하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 이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불협화음이 아닌 한 곡의 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음 속 불길을 잡고 싶다면, 그 안으로 들어가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다. 이렇게 받은 상처를 다시 들춰보는 일은 누구나 쉽지 않다. 그러나 그를 감추고 숨기기만 한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과거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내면가족체계치료를 개발한 미국의 심리학자 슈워츠는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그 부분들은 가장 예민하고 창의적이고 애정을 바라며, 가장 생기 있고 장난기 넘치고 순수하다.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이 부분들을 추방해 버리면 이중고에 시달린다. 원래 생긴 상처에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자기를 거부했다는 모욕감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의 기억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 당시의 과거, 감정과 대면해야 한다. 이는 사실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주변과 사회에서 그들의 경험을 충분히 수용하고 받아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감추고 숨기는 것이 아닌 함께 나누고 위로할 수 있게 말이다. 


트라우마로 인해 지금 이 순간도 고통받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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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7-13 14: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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