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현
[한국심리학신문=황세현 ]
테니스로 이해하는 인간
영화 <챌린저스>에는 테니스를 사랑하는 인물 ‘타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뛰어난 테니스 유망주였던 그는 테니스를 “관계”라고 표현한다.
그에게 테니스란, 공을 치고 맞받아치는 단순한 랠리가 아닌 상대를 파악하는 과정인 것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라”는 지피지기의 정신이 적용되는 스포츠인 것이다. 따라서 상대를 파악하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것은 인간 행위 전반에 적용된다. 나 자신을 알고 싶다면 오히려 독수공방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고독한 시간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아예 없는 인간은 고독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한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사회적 동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들이 있다. 사회성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인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됨으로써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된다.
영화 <챌린저스> 포스터
열정과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타시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남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도 그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항상 테니스다. 경기 중 부상 문제로 자신은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이용해 자신의 테니스를 향한 열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원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끝내주는 테니스 경기를 보는 거”라고 대답하는 그는 테니스를 향한 열정을 넘어서는 사랑을 보여준다.
어떤 것에 열정을 다하고 그것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사랑의 원천은 무엇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모든 사람은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각자 다른 지점에서 흥미나 호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 흥미가 사랑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각자의 취향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취향은 타고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연구자마다 주장하는 바에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기질, 내외부적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을 성격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취향은 기질적일까, 성격적일까?
인간의 모든 것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원치 않아도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한 후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지만, 양육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절까지는 자신이 타고나는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정 내의 문화적 환경은 개인에게 곧 “문화자본”이 된다. 문화자본은 객체화되어 가정 내 서적이나 예술품의 형태로도, 교양이나 취미 등의 신체화된 형태로도 존재하며, 제도화되어 학력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연희, 2002).
개인은 그가 본디 자신 안에 내재한 선호를 따라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내재적 선호조차도 무(無)의 상태에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곧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다. 그 환경에는 세상 모든 것이 포함되지만 특히나 영향이 큰 것은 특히나 가정(부모)과 학교다.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시작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할 수가 없다.
나의 취향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즉 개인은 각각이 속해 있는 사회적 위치와 조응하는 취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이론이다. 문화적 환경 안에서 무의식적이거나 의식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그렇기 때문에 공통의 문화적 환경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음으로써도 취향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회계층에 따른 문화적 환경이 취향과 가치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는 개인의 가치관과 부모의 직업 사이의 관계성이 유의미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많은 계층의 자녀들은 사회적 동조나 전통의 가치관이 강한 “사회적 인간” 경향이 강한 한편, 어느 정도의 경제자본을 갖고 있으나 문화자본이 적은 집단의 자녀들은 미와 개성을 중시하는 “심미적 인간” 경향이 있음이 명확하게 구별되었다.
선호를 형성하는 데에는 당사자의 연령, 계층, 거주지, 성격 등의 요인들이 다양하게 작용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고 비중이 높은 요인은 사회적, 경제적 위치이다.
개인은 부모로 인해 사회적 위치를 많은 부분 타고나게 되지만 추후 성장하여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처럼 취향 또한 내적, 환경적 변화를 통해 바뀌거나 발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취향은 단순히 개인의 자질과 성격에서 나오는 개성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차이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후천적 의지에 따라 변모하거나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챌린저스>에서 아트는 타시에게 말한다.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당신에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는가? 그 무언가는 어떻게 당신의 취향으로서 형성되었는가?
참고문헌
김연희. (2002). 사회계층에 따른 문화적 환경이 취향과 가치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제4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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