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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박한희 ]


대체로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열심히 일하면 사회적 상승이 가능하다고 믿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흔히 ‘능력주의’에 따른 사고라 칭한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부여되는 사회를 지지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고 성공한다는 믿음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크 샌델 교수는 사뭇 다른 말을 건넨다. 능력주의적 믿음은 실제 사회에 반영되고 있을까? 많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사실 능력주의인 것은 아닐까?


 도서 "능력주의와 불평등"


성공투쟁


능력주의가 우리에게 건넨 건 다름 아닌, ‘개인의 책임과 불평등의 합리화’ 라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보상받아야 한다는 믿음은 개인의 책임을 우선시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성공은 노력에 따른 결과인 것이고, 실패해도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결국, 성공한 자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 자리에 올라왔기에, 은연중 실패자들을 멸시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즉, “네가 노력 안 해서 그런 거잖아”, “네가 공부 안 해서 실패한 거잖아”라는 말을 쉽게 뱉게 된다. 이런 말들은 패배자들이 모멸감과 분노를 느끼게 하며, 스스로를 비난하도록 요구하기까지 한다.



인정투쟁


“난 노력해서 성공한 거고, 넌 그러지 않아 실패했으니 멸시받아도 돼!” 과연 능력주의는 이런 간단한 믿음만을 가지게 했을까? 사실 능력주의는 더 근본적인 우리의 욕구를 자극한다. 바로 ‘인정욕구’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인정을 갈망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생계를 위함도 있지만, 그러한 노동을 통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함이기도 하다. 돈은 물질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인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돈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학력이 곧 인정의 수단이 되었다. 수많은 수험생들이 상위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많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수능 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여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더 높은 성적의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 더 낮은 성적의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이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이에 많은 학자들이 대학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성공의 상징이라 여기는 사회가 도래했다고 염려한다. 능력주의는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인정받을 자격’을 고학력, 고소득 등 사회적 지위로 한정시킨 것이다. 

 

 

우리와 그들


또한 능력주의는 사회적으로 구분되고 싶은 욕구를 유발한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바람인 것이다. 차이를 부각시킬수록, 자신의 능력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이러한 욕망은 서울 한복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각 대학교의 ‘과잠’이다. 과잠 중고품 거래가 활성화될 정도로, 수험생들의 과잠 열풍이 성행했고, 심지어 출신 명문 고등학교 이름을 대학교 과잠에 새기는 일도 발생했다. 학력이 노력의 증거이며, 학력을 드러내는 과잠은 ‘우리’를 이어주는 사회정체성이라는 믿음이 한국 사회를 장악한 것이다. 

 


능력을 넘어 


이제 우리는 능력주의의 이면을 신랄하게 살펴야 한다. 온 사회가 승자의 합리화를 돕고, 패자의 모멸감을 외면한다면, 사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는 고학력자, 고소득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저학력자, 필수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사회는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회는 그들의 분노를 외면하고 표면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할 순 없다. 그들의 감정을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귀 기울여야 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패배로 규정된 자들이 진정으로 인정받음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사회의 태도는 무엇일까?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이크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2020 

강준만. (2016). 왜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 되었나?. 사회과학연구, 55(2), 319-355, 10.22418/JSS.2016.12.55.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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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7-15 20: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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