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연
[The Psychology Times=유시연 ]
물은 인체의 약 70%를 차지하는 중요한 물질 중 하나이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3일을 채 견디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알려질 정도로, 생존에 있어 가장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물이다. 그런데 반대로, 물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어릴 적 안좋은 경험으로 인해 물 공포증을 겪으며, 지난 2022년에는 집중호우로 인해 인구밀도가 높은 강남역 일대가 침수되면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오늘 기사에서 다뤄 볼 주제는, 바로 ‘물 고문’이다. 물 고문은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cute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부터 구토, 저체온증, 폐수종과 같은 신체적 상해뿐만 아니라 숨을 쉴 수 없다는 공포심으로 정신적 상해도 함께 주기 때문에, 사람을 매우 공포스럽게 하는 고문 방식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 물 고문의 종류
당연히 우리에게 익숙한 물 고문 방식은, 당하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양쪽에서 포박한 상태에서, 입과 코에 물을 들이붓거나 물 속으로 얼굴을 처박아 숨을 못 쉬게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을 남겼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이 불법 체포되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 고문과 물 고문을 당했고 그 결과 욕조에 목이 눌려 질식사하였으며, 부검 과정에서 폐 속에 물이 차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 사건의 물 고문 방식은, <변호인>, <1987> 등 우리나라의 군부 독재 시절을 담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사 고문’이다. 물에 강제로 머리를 넣거나, 물이 가득한 수조에 가두거나, 기절할 때까지 얼굴에 물을 뿌리는 등의 형식이다. 이외에도 강제로 물을 마시게 하는 ‘강제 수분 공급’부터 사람을 철장에 가둔 채로 물에 빠트리는 ‘워터던전(Water dungeon)’, 천을 얼굴에 덮고 그 위로 물을 붓는 ‘워터보딩(Waterboarding)’까지 물 고문에도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 중국식 물 고문
그런데 이런 다양한 방식 중에서도, 유독 왜 공포심을 가지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게 하는 물 고문이 있다. 바로, 역사상 가장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은 ‘중국식 물 고문’이다. 그 방식은 미간이나 이마 부분에 장시간 동안 물방울을 떨어트리면 끝이다. 말로만 그 방식을 듣기엔 크게 힘들까 싶지만, 실제론 엄청난 공포심이 유발되는 고문이라고 한다. 사지는 모두 고정된 채로, 차가운 물방울이 불규칙한 주기로 장시간 이마에 떨어지면, 피고문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5년, 디스커버리 채널의 프로그램 ‘MythBusters’에서는 직접 중국식 물 고문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한 여성 참가자는 실험 시작 후 약 15분이 흐르기까진 어떤 자극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1시간이 지나고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자 ‘커다란 무언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기분’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실험 중단을 호소하고, 실험 기구를 풀어주자 뛰쳐 나가는 등 극도의 공포심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였다.
물방울 하나가 사람의 심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중국식 물고문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반복적 자극’이다. 일시적인 강한 고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지만 지속적으로 물방울을 떨어트림으로써 온 신경을 이마로 집중시킨다. 처음엔 ‘물방울 하나 정도야.’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체험이었지만, 이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고, 사지가 속박된 상태에서 그만둘 수 없는 환경 자체가 모든 자극에 대해 더욱 과장되게 인식하도록 만들면서 당사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학습적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물론 개인의 인권이 매우 중시되는 21세기 사회에서, 우리가 고문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식 물 고문’처럼 반복적으로 정서적 압박을 느끼는 일은 일상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으로 이어진다. 피할 수 없는 부정적 상황이 반복적으로 닥치면, 나중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더라도 시도도 없이 무기력하게 포기하는 상황을 일컫는 용어이다. 어릴 적부터 ‘학습된 무력감’의 예시로 ‘코끼리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동물원에 사는 아기코끼리는 어릴 적 자신에게 채워진 족쇄를 끊어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해내지 못하고, 주어진 삶에 적응한 채 어른이 된다. 그 어떤 족쇄도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끊어낼 정도로 몸집이 거대해진 어른 코끼리지만,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 가진 채, 여전히 자신은 족쇄를 풀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습적 무력감이 위험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가정 폭력이다. 2017년 방영되었던 OCN 드라마 <보이스> 시즌1에서도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가정 폭력을 당한 여성은 가정을 꾸린 후에도 자신의 아이에게 가정 폭력을 행사한다. 이미 충분이 어른이 되어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에게 벗어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실로폰 소리에 두려워하고,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학대의 경험으로 학습된 무기력이 이미 정서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대의 피해자가 자녀가 아닌 부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981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이 일시적으로 가정을 떠나도 60% 이상의 여성이 다시 가해자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 '학습된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그렇다면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무력감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폭력으로 인한 학습적 무력감은, 가해자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어. 내가 이 처지인 건 모두 내가 못났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존감이 매우 낮아지는 것이다. 자신의 못난 점에만 주목할수록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자신의 강점에 주목해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조금씩 소소한 도전과 이를 성공하는 경험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있다, 충분히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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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참고문헌]
1. Hyunjae Cho. "The Effect of LEARNED HELPLESSNESS on the Adaptation to College Life." Regulations 6.2 (2021): 10-15.
2. 홍정현, 권현정, 윤성인 and 이수정. (2017).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가정 복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학습된 무기력과 사회적지지,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여성, 22(1),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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