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경
[The Psychology Times=신선경 ]
1391번
이 번호를 아시나요?
바로 아동 학대 신고번호 입니다.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살인사건을 아시나요?
2020년 6월,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의 한 아파트에서 10살이었던 A군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던 중 심정지 상태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사망하고 말았죠. 그를 학대한 범인은 바로 아이의 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계모 성씨입니다. 범인의 진술과 수사 자료를 확인해보면, 학대의 수위는 단순 훈육이라고 볼 수 없는 학대 수준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A군이 게임기를 고장내고도 고장 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서 훈육 차원에서 여행용 캐리어에 넣었다. 7시간 가량 물을 주지 않고 가두었고, 가방에서 소변을 보자 더 작은 캐리어 속에 넣었다."
"A군이 가방에 갇힌 뒤 '숨이 안쉬어진다'고 수차례 호소했음에도 성씨는 가방에 올라가 뛰기도 했고, 울음과 움직임이 줄어든 뒤에도 그대로 방치했다."
또한 이러한 잔인한 형태의 '훈육'이라는 이름의 '학대'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A군의 사망 한 달 전 이웃 주민들은 A군의 울음 소리에 가정폭력 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A군의 병원 기록에 따르면 오래된 멍 자국과 담뱃불 자국이 있었고, 머리 부분이 2.5cm 가량 찢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학대로 보이지만 원가정보호 조처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A군은 생지옥으로 다시 걸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이후 모니터링 등의 후속 조치 역시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예시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는 수 많은 A군들이 존재합니다. 신생아 부터 유치원생, 초등생,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 까지 과거의 학대와 가스라이팅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전화번호 네 자리면 그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만약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과연 도움을 주는 것은 맞을까요?
오늘은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아동들의 심리를 파악해보고, 우리가 이들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동 심리
1. 부모에 대한 불신에서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처음 태어나, 자신의 세상을 구성하는 전부는 바로 부모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모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또는 학대하게 되면 이들은 '부모'에 대한 불신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나를 낳고 키우는,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 부모도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데 그 밖에 세상은 더 심할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죠. 그 결과 학대 받은 아이들의 대부분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에서 부터 사회 자체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무서워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이들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리조치를 취해도, 아이들 중 대다수는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사를 많이 표현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라서도 올바른 사고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되어 홀로 외톨이처럼 살아가거나,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에게 헌신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2. 학습된 무력함
학습된 무력함은 유명한 심리학 실험 중 하나 입니다. 줄에 묶인 강아지에게 전기 충격을 계속적으로 가하면 처음에는 발버둥 치지만, 자신이 변화 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되면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마치 버터에 빠진 개구리들이 열심히 뛰어오르다가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말이죠. 학대 당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에는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됩니다. 특히 이런 경우는 대놓고 이루어지는 학대보다는 가스라이팅과 같은 소시오패스적 학대나,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가정으로 비추어 지지만 몰래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특히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자신이 탈출구가 없다는 느끼는 순간 극대화 되는 것이죠.
3. 자아상과 자존감 저하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는 것이죠. 학대를 하면서 범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어'
'너 같은 건 죽어야 해'
'내가 하라고 했는데 너가 안해서'...
범죄자들은 아이들을 학대하는 이유 따위 없지만, 학대를 자행하는 이유가 모두 아이들에게 있는 것처럼 가스라이팅을 하며 그들을 때리거나 짓밟습니다. 그래서 결국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자신이 문제아, 나쁜 아이라는 부정적이고 나쁜 자아상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자아상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이기 쉽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말조차 쉽게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자아상 형성이나 자존감 저하는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정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신체적, 성적 학대와도 동반되지만, 정서적 학대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폭언, 욕설을 하거나, 아이의 앞에서 심한 부부싸움을 하거나(특히 아이의 문제로 크게 다투거나), 아이들과 정서적 교감을 하지 않거나, 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방관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학대를 당하는 것 같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면 즉각적으로 신고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손 짓 몇 번에 아이들의 수명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적 차원에서 아동 보호를 위한 시스템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천안 계모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가정폭력 의심 신고를 받았을 때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경찰은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정황을 파악해야 할 것이며, 만약 원가정 보호조치를 취하게 되었다면 사후적인 관리 시스템들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실현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일상 속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던 학대는 없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을 수도 있고, 부모라면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에게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거나,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해 정서적인 학대를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우리의 노력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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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부터 비합리적이지만, 더 나은 내가 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희경. "아동학대는 '괴물 같은 부모'의 탓?." 통합인문학연구 8.2 (2016): 89-99. 아동학대 대응에서 공공의 역할 들여다보기.
정덕영(Jeong Duke Young). "아동학대 피해자의 심리에 관한 연구." 한국범죄심리연구 2.2 (2006):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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