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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박한희]


6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기사의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했다. 모든 기사에 필자만의 의미가 담겨왔지만, 마지막 기사는 특히 더 오랜 고민과, 오랜 의미가 담기게 된다. 그 오랜 고민 끝에, 마지막 기사는 혐오가 익숙해진 우리 사회가 다시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사회의 혐오는 매우 다차원적이다. 하나의 기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댓글 너머의 그들은 서로 다른 성별을, 서로 다른 지역을, 서로 다른 학벌을, 혐오한다. 그들이 내비치는 혐오들은 특별한 근거가 있어 보이지도, 기사와 특별한 연관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혐오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셔터스톡

 

혐오의 시작 


혐오감은 자신이 지닌 부정적 요소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일종의 심리 작용이다. 자신과 다르다고 여기는 특정 집단을 차별화하고 분리시키려는 경향이 감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혐오스러운 타자와 자신을 구분함으로써, 그러한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우월감을 찾는 데에서 시작된다. 많은 학자들은, 혐오감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외부의 타자에게로 투사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혐오의 대상은 특별한 이유 없이, 오직 타자의 불안한 마음을 씻기 위한 일종의 ‘희생양’이 된다. 즉, 혐오감은 그 기원만으로 보면 단순한 주관적 믿음과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혐오감은 상상의 영역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혐오감이 실존하는 세계로 표출되었던, 끔찍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혐오의 진실


가장 최근 발생했던, 폭행과 불법 촬영의 범죄 대상이 된 유명 여성 유튜버의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들이 행한 폭행과 불법 촬영, 협박과 성착취가 명백한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에선 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성범죄가 발생하면, 성범죄의 피해자가 정말 여성뿐인지, 가해자는 남성뿐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책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발행되면, ‘역시 특정 정당에서 나온 생각 같다’, 혹은 ‘역시 특정 지역에서 나온 의원 같다’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사실, 그들이 보여주는 혐오감은 설득력이 있지도, 객관성을 가지지도 않아 보인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의 혐오감은 오히려 쉬워지고, 더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불안을 해결할 방법을 모르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혐오를 넘어


정말, 우리는 내면의 불안함을 혐오라는 방식으로만 표출할 수밖에 없는 걸까? 많은 학자들은 혐오 대신, 자신에 대한 긍정과 자기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타자를 돕고 사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회 속에서, 나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 타자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과도한 경쟁 속에서 헐떡이며, 과도한 정보와 감정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가는 순간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이해하길 간절히 바란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타인을 덜 미워하고, 더 이해하며, 더 사랑하기를 바란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나의 불안함을 외부로 표출하기 전, 한 번 더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불안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용기 있는 일이다. 

 

언젠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면, 타인을 사랑해 보는 용기를 내어보길 희망한다. 누군가 공유한 점심 메뉴에 좋아요를 누르고, 누군가 공유한 아픔에 공감의 댓글을 남기고, 누군가 내비친 혐오감에 동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 역시 그런 사회를 늘 희망하며, 용기 내겠다.




박인철. (2021). 타자성과 혐오감: 혐오감의 극복을 위한 현상학적 대안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135, 59-86, 10.23908/JSPS.2021.12.1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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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8-05 17: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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